인간이 세상 만물 중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정신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식물도 정신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물질계의 지배력이 정신계보다 크다. 물질의 원리, 원칙에 따라 삶의 행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적자생존의 법칙이 철저하게 지켜진다는 얘기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며 생존을 위해 약자를 가차 없이 파괴한다. 그런 법칙으로 유지되는 것이 자연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정신계의 역할이 훨씬 막강하다. 정신의 힘은 인간을 동식물과 차별화하는 뚜렷한 기준인 셈이다. 정신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다. 감정, 이성, 생각, 기억, 상상, 무의식, 영혼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세계니까.
정신계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부자나 스타 혹은 최고 권력자가 되는가 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과거로 가거나 시간을 앞질러 미래로 갈 수도 있다. 공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고, 우주 끝까지 가는 것도 가능하다. 죽음의 세계나 전생, 다음 생까지도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정신계다.
그러나 확신이 없다. 물질계에서는 증명이 되지 않는 문제가 많은 탓이다. 오감이 지배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나가는 현장, 몸이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과 긴장, 화해와 이완을 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 삶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계의 수호신인 과학의 힘이 막강한 시대다. 정신계의 일들을 증명해내고 우리의 눈앞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계의 힘이 강한 곳이 있다. 종교나 예술 분야가 그렇다. 특히 정신계는 예술가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모든 예술은 정신의 표현이니까.
이러한 정신계와 물질계의 관계를 주제로 삼고 있는 작가가 안창석이다. 그의 작품은 정신계의 모습을 눈에 보이는 현장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는 추억, 소망, 꿈, 그리움, 회상 같은 것이 추상적 이미지로 보인다.
이를 가장 과학적 사고방식인 픽셀로 화면에 옮긴다. 그래서 안창석 회화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격자무늬다. 작은 사각형을 이어서 붙이는 기하학적 추상화처럼 보인다. 추상 이미지를 격자로 쪼개서 화면을 가득 채운 미니멀 회화 같기도 하다.
격자는 디지털 언어를 조형화한 것이다. 그리고 배경에 깔리는 추상 이미지는 정신계의 모습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우리의 삶이 정신계에서 생성되는 모든 일들이 축적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디지털 언어로 담아내는 것이 안창석의 회화인 셈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