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일 방송되는 KBS '자연의 철학자들' 36회는 '그 숲에 현자가 산다' 편으로 숲을 통해 동심(童心)을 지키고 삶을 배우는 동화작가 배익천 씨의 철학을 들어본다.
늦가을의 산 냄새가 가득한 숲과 동심을 지키는 숲지기가 있다. 경남 고성군의 어느 숲속 따사로운 햇살이 드리우는 이곳은 동화작가 배익천 씨(73)의 터전이자 '생명의 보고'다.
그는 1974년 신춘문예에 동화 '달무리'로 등단해 50여 년 동안 동화를 써왔다. 그는 동심을 잃지 않은 것처럼 숲에 대한 애정과 꿈을 간직해왔다. 10여 년 전 그토록 원했던 '숲을 가꾸는 삶'을 이루게 되었고 주말마다 숲으로 향했다.
그러다 그는 여생을 숲에 더 집중하기 위해 3년 전부터 숲에서 살기 시작했다. 숲에 있는 모든 존재는 살아있기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과 나무가 말을 걸어주고 가르쳐주는 것 같다는 배익천 씨.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감동하게 할 씨앗을 넣어두는 문학'인 동화를 쓰고 동심을 지키려 매일 숲으로 향한다.
10여 년 전 그저 나무만 가득했던 숲을 배익천 씨 혼자 가꾼 건 아니었다. 같이 숲을 가꾸는데는 30년 지기 홍종관(74)·박예원(65) 내외가 있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기듯 중장비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호미 하나로 지금의 숲을 일궈냈다.
덩굴에 뒤덮여 인적이 없던 야산은 어느새 생명으로 가득한 숲이 되었다. 호미로 산을 옮긴 세 사람이 여전히 숲에 대한 집념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통나무 하나를 거뜬히 들어 옮기는 배익천 씨. 낡은 고무통을 허리춤에 묶어 돌을 나르는 홍종관 씨. 맨손으로 막힌 샘물을 뚫는 박예원 씨. 칠십을 바라보거나 이미 넘긴 세 사람의 힘이 청년 못지않다.
30년 된 벗들이 함께한 세월과 서로를 향한 마음은 숲이 되고 산이 되어 하나의 결정체가 되었다.
가을빛으로 물든 단풍이 절정을 이루자 숲의 생명력이 더욱 넘쳐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숲을 찾아온 사람들의 동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도토리를 줍고 마음껏 뛰어놀며 나무와 친구가 된다.
어른들 또한 해맑은 아이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을 누빈다. 숲 곳곳에 한국 아동문학 작가들의 나무 200여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작가들은 자기 이름의 나무와 소통하며 힘을 얻고 동심을 회복한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자연 속에서 느끼는 순수한 마음은 동심(同心)이다.
이는 곧 사람으로 태어나 가질 수 있는 때 묻지 않는 마음이자 배익천 씨가 숲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동심(童心)이 아닐까.
배익천 씨에게는 수많은 스승이 있다. 숲의 모든 존재는 가르침을 주기에 그에게는 모두가 선생님과 다름없단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깊은 계곡으로 향한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춘란 선생님'이 풍성한 잎으로 맞이한다. 춘란이 특별한 이유는 30여 년 동안 한 자리에서 악조건을 견뎌내면서도 향기로운 꽃을 피우며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가 이 숲에 살면서 춘란을 통해 배워 늘 다짐하는 것. "사람은 살아있을 때는 고마운 사람이 되고 죽어서는 그리운 사람이 되어야겠다." 배익천 씨는 오늘도 숲의 존재들에게 배우고 성찰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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