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정권말기에 나타나는 권력누수 현상으로 인해 정부가 정책수행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경제불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안으로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연쇄부도의 압박이 크다. 밖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아 물가상승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이에 따라 서민들의 삶이 극도로 불안하다. 경제가 금융위기를 겪은 후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팎으로 타격을 받아 다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렇다 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선거가 가열되면서 정치권이 무모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먼저 우리 경제는 양극화로 인해 서민들의 고통이 크다. 이를 해소한다는 논리로 정치권은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등 복지정책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러한 복지정책들은 증세를 통한 재원마련은 물론 성장동력과 고용창출능력의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확실한 대안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책 없는 복지공약의 남발은 경제를 회생이 어려운 재정위기의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지역불균형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야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신공항건설, 산학클러스터조성, 기업유치 등 갖가지 개발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경제적 타당성과 확실한 자금조달 방안이 없으면 실패의 가능성이 크다. 무모한 개발 공약은 국가재정만 낭비하고 거꾸로 지역의 불균형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
한편 중소기업들이 재벌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해 숨이 막히고 있다. 정치권은 출자총액제도의 부활, 재벌세 부과, 순환출자금지 등 재벌개혁 방안을 총동원하여 선거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재벌기업들은 경제를 지배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재벌기업들이 경제를 인질로 잡고 갖가지 위협을 가할 경우 개혁은 물거품이 된다. 치밀한 계획과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재벌개혁은 선거 후 재벌보호로 둔갑하는 것이 보통이다.
선거는 국민이 나라발전에 가장 적합한 인물과 정책을 선택하는 민주주의 제도다. 이를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킴으로써 국민을 기만하고 경제를 희생의 대상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를 심판하는 것도 국민이지만 정부를 지키는 것도 국민이다. 국민을 위해 올바른 정책을 펴는 것이 정부가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쇄신이다. 선거를 치르는 주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다. 여야 정치권은 인기영합, 지역영합, 재벌영합 등의 불공정을 과감히 배제하고 국민을 위해 치열한 정책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 다음 국민의 심판을 당당하게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올 선거가 경제회생, 정치발전, 사회통합의 일석삼조를 이루는 민주주의의 잔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