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속을 헤매다 깨어난 그레고르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각질로 된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밑으로 하고 위를 쳐다보며 누워 있던 그가 머리를 쳐들자,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갈색 배가 보였다.
ㅡ몰티즈종의 강아지가 백팩을 메고 노란 버스로 타려고 달려간다. 활짝 열린 차창에서는 푸들종과 비슷한 강아지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다. SUV 차량을 운전하며 시골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고양이. 색소폰을 멋들어지게 부는 고양이와 그 옆에서 과장된 포즈로 노래하는 강아지는 지금 버스킹에 흠뻑 빠진 모양새다.
두 가지 상황은 모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웃기는 이야기다. 만화에서나 가능한 상상의 세계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끔찍하고 엽기적이며 심각한 분위기인 데 비해 두 번째는 유쾌하고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가벼운 느낌이다.
앞의 것은 실존주의 문학 최고봉으로 꼽히는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 도입부다. 인간이 곤충으로 변하는 초현실적 상황을 통해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소외 문제를 다룬 걸작이다. 만화적 상상력으로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뒤의 것은 작가다운 코믹한 설정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정일의 작품 내용이다. 만화책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유쾌한 상상력이다.
그런데 유쾌한 상상력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가벼운 상황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의외로 묵직하다.
박정일은 반려동물을 의인화해서 현대인의 모습을 나직한 언어로 풍자한다. 그는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들어가 정착한 작가다.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인의 조급함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를 고민해왔다. 시골의 느린 생활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은 작가는 만화적 표현으로 이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주제는 여행이다. 그래서 자동차가 많이 등장한다. 코믹한 동물과 낡은 차량으로 연출하는 만화적 구성은 현대의 속도에 제동을 거는 작가의 발언이다.
“조금은 천천히 가며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살피는 삶이 더 행복하지 아니한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