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쓴맛, 내겐 보약이었네’
▲ 안티 백만대군에서 응원군을 얻기까지 오뚝이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좌절과 감동으로 점철돼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본프레레 감독은 2002년 월드컵 이후 대표팀에서 멀어졌던 이동국을 다시 파주 트레이닝센터로 불러들인 고마운 존재다. 그래서인지 본프레레 감독을 추억하는 이동국의 마음이 애틋하기만 하다.
“히딩크 감독님 때는 주변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계시다보니 감히 다가가서 얘기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본프레레 감독님은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계셨다. 감독과 선수와의 관계에서 벽이 쌓이면 안 된다. 경기를 하다가 답답한 느낌이 있거나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감독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할 수 있어야 그 팀이, 그리고 선수가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많이 했던 감독님과는 항상 좋은 성적을 냈다. 본프레레 감독님을 비롯해서 아드보카드 감독님, 최강희 감독님 등이 나한테 마음을 보여주신 분들이다.”
#안정환
안정환과 이동국을 얘기하다보면 ‘인생유전’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반지의 제왕’으로 급부상했던 안정환과 월드컵 경기를 TV로 지켜봐야 했던 이동국의 상황은 극과 극, 그 자체였다. 본프레레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대표팀에 들어간 이동국이지만, 월드컵을 통해 스타로 등극한 선수들과 이동국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가 없었다. 당시 인터뷰 때 이동국은 “나랑 정환이 형과는 격이 다르다. 그 형은 월드컵을 통해 완전히 올라선 선수라 표현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생기더라”며 아픈 속내를 드러냈었다. 그러나 2012년 현재, 안정환은 이미 은퇴를 했고, 이동국은 상승가도를 달리며 두 개의 유니폼(전북현대, 대표팀)을 입고 질주 중이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생각의 중심이 잡혀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그때는 경험도 많지 않았고, 여러 차례 힘든 일을 겪다보니 주변 상황에 대해 마음이 오락가락했던 시간들이었다. 당시의 내 모습은 다소 소극적이었을 것이다. 운동장에서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월드컵 스타들과 함께 뛰다보니 자꾸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로 못난 모습이었다.”
▲ 사진제공=전북현대 |
이에 대해 지금의 이동국은 이런 설명을 곁들인다.
“스트라이커는 어느 포지션보다 팬들의 주목을 받는 자리다. 그래서인지 해외 진출을 했던 다른 선수들보다 유독 나한테 관심이 쏠렸고, 언론에서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기사를 많이 썼다. 그에 대한 섭섭함이 많아서 농담 삼아 남일이 형을 빗대 그렇게 표현을 한 것 같다. 당시 남일이 형한테도 ‘언론의 관심이 형한테는 별로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브레멘이나 영국 미들즈브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돌아온 것 자체가 ‘실패’는 아니었다고 본다. 앞으로 그때의 희로애락이 좋은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강희 감독
이동국한테 최강희 감독은 ‘아버지’나 다름없다. 실수를 해도, 나락에 떨어져도 한없이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아버지. 성남 일화에서 상처만 안고 나온 이동국을 만나 ‘우린 너를 간절히 원한다’라며 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준 최 감독에게 이동국은 성적으로 보답을 해나갔다.
“지금도 감독님을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한다. 최강희 감독님은 아시안게임과 대표팀 시절 선수와 코치로 인연을 맺은 분이었다. 그래서 나한테는 감독 이미지보다는 코치 선생님으로 기억돼 있었는데, 그날 내 앞에 나타난 분은 감독님이셨다(웃음). 무게감과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었다. 감독님 말씀을 계속 듣다가 자연스레 그 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때 감독님이 날 찾아오지 않으셨더라면 지금의 난 어떤 모습이 됐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다.”
최근 최강희 감독은 사석에서 기자와 만나 이동국이 전북 현대와 재계약 맺기 전(2011년 11월 25일, 전북현대와 2년 재계약 합의)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클럽으로부터 40억 원이 넘는 몸값을 제시받았지만, 그걸 거절하고 전북에 남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동국 또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전북 현대와 재계약을 앞두고 중동의 한 팀으로부터 로또 1등에 버금가는 대우를 제의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동국이 이런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북과 재계약을 한 배경에는 최강희 감독 때문이었다.
“돈을 좇아가기보단 돈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돈에 얽매이다보면 내가 할 일을 놓치게 되고, 돈 때문에 축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었다. 특히 최강희 감독님과 감독과 선수로서 더 오랜 인연을 맺고 싶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북과 재계약을 하고 나니까 이번엔 감독님이 대표팀으로 가버리시더라(웃음).”
이동국은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맡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우승 뒤풀이 자리에서 선수들이 감독님한테 직접 여쭤본 적이 있었다. 언론에선 감독님이 국대 감독을 맡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감독님의 솔직한 생각이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최 감독님은 절대 대표팀을 맡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만약 자신이 대표팀으로 들어가게 되면 전북 선수들을 모두 다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하셔서, ‘정말 안 가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수들 휴가 기간 동안에 그런 발표가 나더라. 감독님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 결정을 내리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셨을까 하는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사제지간의 뜨거운 정이 진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최강희 감독의 대표팀 감독 선임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동국의 대표팀 합류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당시 이동국은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란 기대와 설렘보다는 ‘봉동이장’을 잃은 전북현대가 큰 위기 없이 좋은 성적을 내야 최 감독이 마음 편히 대표팀에 집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더 많이 했다고 말한다.
▲ 최강의 멘토와 멘티, 최강희 감독(왼쪽)과 이동국.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많은 분들이 ‘너,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내 축구인생의 대부분은 비난과 비판의 소용돌이 속에 머물렀다. 지금은 그 비난을 퍼붓던 분들이 날 응원하고 계신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표현 못할 뿌듯함? 행복감이 물밀 듯하다. 그래서 이 불쌍한 콘셉트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날 응원하지 않겠나(웃음).”
이동국한테 ‘자신의 축구인생이 어디쯤 와있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이동국은 “축구 경기로 비교한다면 이제 막 경기를 치르기 위해 라커룸에서 그라운드로 걸어나가는 순간이 지금이다”라고 말했다.
“경기 시작 전의 설렘을 잊고 싶지 않다. 축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지금 경기를 앞둔 선수이고 싶다. 아마도 은퇴하기 전까지 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내 축구는 끝이 아닌 시작을 향해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 봉동=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 지난 2월 열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 쿠웨이트전에서 선취골을 넣은 이동국이 박주영과 포효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감독과 선수 사이에는 ‘궁합’이 존재한다?
▲예스. 선수는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살아나기도 하고, 기량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내겐 최강희 감독님과 지금 전북 현대를 이끌고 계시는 이흥실 감독대행님과의 궁합이 최고라고 믿는다.
―박주영이 부러운 적이 있었다?
▲예스. 내가 박주영을 부러워하는 건 바로 그의 나이다. 나보다 축구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지 않나. 요즘 박주영의 군 입대 연기 문제로 시끌벅적한데, 난 주영이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를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더 이상 숨지 말고 나와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해결해 나갔으면 한다. 자꾸 숨고 움츠러들면 축구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나 또한 박주영 못지 않게 시련이 많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한테 예능감이 있다?
▲노! <힐링캠프>나 1박2일에 출연한 내 모습을 보고 ‘이동국의 재발견’ 운운하면서 예능감이 뛰어나다고 얘기하시는데, ‘1박2일’은 내가 특별히 한 게 없었고, <힐링캠프>는 출연자 분들이 내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스토리들을 잘 끄집어내주신 덕분에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잘 웃고 웃음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시키는 능력은 없다.
―안정환 고종수 이동국 중에서 이동국이 제일 인기 있었다?
▲노!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은 고종수 선수를, 여학생 팬들은 외모가 뛰어난 안정환 선수를 더 좋아했다. 난 세 명 중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 그래도 두 선수는 이미 은퇴했고, 난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그게 더 행복하다(웃음).
―결혼 후 아내보다 더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이 질문에 ‘예스’라고 답하기를 기대하는 건가? 당연히 ‘노’다.
―최고의 투톱 파트너는 김은중(강원FC)이다?
▲예스. 김은중과는 청소년대표팀 시절부터 함께 호흡을 맞춘 사이다. 특별한 얘기가 없어도 운동장 안에서 서로의 역할을 정확히 꿰뚫어본다. 경기하면서 좋은 장면도 많이 나왔고, 은중이랑 같이 뛰는 것 자체가 좋다. 만약 둘이 대표팀을 떠나 프로에서도 한 팀에 있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유니폼은 포항제철의 줄무늬 유니폼이다?
▲세모도 있나? 포항은 프로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인연을 맺은 팀이다. 어렸을 때 포항 유니폼을 받아들고 설레는 마음에 유니폼 입고 혼자 사진도 찍고 유니폼을 머리맡에 두고 밤을 하얗게 새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전북현대 유니폼은 이동국을 다시 일으킨 팀이라 더 큰 애착이 있다.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린 유니폼은 포항과 전북 유니폼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
▲예스. 청소년대표팀 시절이다. 또래 선수들과 같이 공을 차며 낄낄거리며 즐거워했던 시간들이었다.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언론이나 기사들에 좌지우지 안 되고 내 중심을 잡고 축구만 할 것 같다.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