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요람’에 삼척시가 왜 시비?
▲ 김준기 회장이 삼척에 복합에너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매입한 방재산업단지 부지를 두고 갖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 |
강원도 삼척지역이 들썩이고 있다. 이 지역이 원자력발전소 건립 후보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원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총선과 맞물려 이 지역에 출마한 총선 후보들도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해 ‘원전 반대’를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 이 지역에 투자하려는 기업들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삼척시가 조성하려는 복합에너지·산업단지에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관련 단체들은 원전 반대와는 또 다른 이유로 감정이 얽히고설켜 있다.
삼척시의 복합에너지·산업단지 조성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동부, 포스코, STX, 삼성물산 등 대기업들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관련 단체들이 행정적 미숙을 드러내면서 혼란을 더해 상황이 매우 복잡해졌다. 사태의 중심에는 동부그룹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월 동부발전은 “강원도개발공사(강개공)와 삼척시 근덕면 일대 79만여㎡(24만 평)에 대한 매매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장차 이 지역에 14조 원을 투자해 그룹의 신성장동력 중 하나인 복합에너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 삼척방재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제공=삼척시청 |
문제의 발단은 강개공과 동부발전이 맺은 매매계약이다. 강개공이 보유 부지를 매각하는 데 동부발전과 수의계약한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동성 위기에 몰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랴부랴 자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강개공의 말 못할 사정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수백억 원에 달하는 부지를 공개 입찰도 하지 않고 특정 기업과 수의계약했다는 것 자체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오세봉 강원도의원(새누리당)은 “아무리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지만 수백억 원에 달하는 보유 부지를 매각하면서 특정 기업과 수의계약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더욱이 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 대금을 무이자 분할납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특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해당 부지가 원전 후보지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개공은 삼척시와 협의도 없이 매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부발전 관계자는 “부지를 매입할 당시 원전 후보지인지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강개공 건설사업팀 관계자는 “전체 부지까지는 아니어도 부지 중 일부가 원전 후보지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며 “나중에 확정고지되면 그 부분만 다시 매각하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강개공 관계자 말처럼 동부발전 측은 “올해 말 해당 부지가 원전 건립 지역으로 결정된다면 해당 부지를 한수원에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삼척시청 전략산업과 관계자도 “원전 부지로 확정되면 동부 측이 모두 내놓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동부발전이 해당 부지를 모두 매각하는 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봉합될지는 의문이다. 매입·매각 과정에서 동부발전이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시세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김준기 회장의 고향이 삼척이고 김 회장의 부친 고 김진만 의원이 삼척에서 터를 갈고 닦은 인연을 고리로 강개공이 동부에 유리하게끔 매매계약을 한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오세봉 도의원은 “현재 소방방재단지로 지정돼 있는 부지가 일반산업단지로 변경되면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뛴다”며 “그럴 경우 동부는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부발전 관계자는 “땅장사로 몰아붙이는 것은 말도 안 될뿐더러 사안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지적”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만일 해당 부지가 원전 건립 지역으로 결정되고 난 후 매각 가격에 대해서는 “아무리 국책사업이라도 매입 가격보다 낮게 매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데는 삼척지역의 복합에너지단지를 탐내는 기업들 사이의 신경전도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척시 복합에너지단지 조성사업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기업들은 삼척시를 가운데 두고 서로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삼척시는 이를 원만하게 조율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심지어 삼척시청 내에서조차 담당부서에 따라 혼선을 빚고 있을 정도다. ‘네 탓’ 공방전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삼척시청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일은 산업단지와 관련해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삼척시청 기업투자지원과 관계자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이번 일은 명백히 동부발전이 원전 후보 부지를 무리하게 사들이면서 불거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부발전 측은 삼척시에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동부발전 관계자는 “처음부터 삼척시 측이 우리를 피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며 “우리의 사업계획서는 받아주지도 않았고 설명회도 들어주지 않은 것으로 봐서 특정 기업을 밀어주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삼척시청 기업투자지원과 관계자는 “동부발전이 처음 찾아온 것은 지난해 10월이었고 그때는 이미 다른 기업과 협의하고 있던 상태였다”며 “그 상태서 동부발전과 투자협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데 동부발전이 덜컥 해당 부지를 매입해 들어왔다”고 전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