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들 간 샅바싸움… ‘박’ 쪼개질라
▲ 지난 3월 29일 홍사덕 후보(서울 종로)가 청계광장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지원을 나온 가운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런데 총선 승리로 위상이 강화된 친박 인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기선 제압을 위한 권력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5월 15일로 확정된 전당대회 때의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친박계 내에서 치열한 세 대결이 벌어질 조짐도 보인다. 권력을 선점하기 위한 기 싸움 경쟁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친박계의 내막을 들여다보았다.
“이번 총선의 일등공신은 엄연히 박근혜 비대위원장이다. 박 위원장과 친박계가 사실상 이번 총선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게 당내에서는 총선 승리 공적을 서로 가져가기 위한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친이·친박이 아닌 친박계 내의 새로운 세력 분화와 세 대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박 위원장이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주변인사들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의 ‘총선 전후’를 여실히 경험한 한 친박계 인사는 친박계 내부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이와 같이 전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향해 동참할 친박 인사들이 ‘대선 이후’까지 내다보고 ‘이너서클’ 내에서 높은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총선에서 ‘뜨고 진’ 친박 인사들의 면면을 우선 살펴보자. 친박 핵심 중진 중에는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의 부상이 가장 눈에 띈다. 서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맡으며 ‘화려한 복귀’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공천 헌금 수수 의혹에 대해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뒤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왔다. 하지만 지난 2010년 12월 사면을 받은 이후 장외에서 꾸준히 조직 관리를 해오며 박 전 대표를 도와왔다. 지난해 4월 그의 사조직인 ‘청산회’의 계룡산 시산제에는 1만여 명의 지지자가 몰려 여전한 서 전 대표의 위상이 확인됐다.
이번 총선에서도 김을동 노철래 이우현 등 측근들이 상당수 당선되면서 향후 친박계 중진으로 당내에서도 세를 다져갈 가능성이 높다. 서 전 대표는 친박계 중진으로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홍사덕 의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당내에서는 “서청원, 홍사덕 등 친박연대 출신 중진들이 향후 친박계 내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친박계 내에서는 박근혜 위원장이 서 전 대표에 대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서 전 대표가 이미 지난 18대 총선에서 공천 헌금 수수 의혹으로 실형을 살았던 만큼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제 서 전 대표의 측근들이 이번 총선에서 다수 공천을 받아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검찰에서도 총선 이후 공천 비리 수사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당선자들 중 일부는 배지를 반납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홍사덕 의원 역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다가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에게 패했으나, 원외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낙선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만큼 홍 의원은 총선이 끝난 이후 빠르게 박근혜 위원장을 위한 ‘대선 준비모드’로 전환한 상황. 6선의 홍사덕 의원은 원내대표를 지낸 경력이 있어 향후 박 위원장의 대선가도에서 서청원 전 대표와 함께 실질적인 ‘좌장역’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와 김무성 의원. |
그러나 여전히 친박계 일각에서는 김 의원의 ‘변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견제심리가 남아있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박 위원장 역시 김무성 의원이 한때 친이로 돌아서며 박 위원장을 공격했던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던 만큼 쉽게 측근 자리를 되돌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박 위원장과 김무성 의원의 오랜 앙금이 풀리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중진의원들 외에 총선에서 공을 세운 친박계 의원들도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 위원장의 신뢰가 두터운 최경환 의원과 박 위원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유정복 의원, 또 현재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이학재 의원 등이 원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경제통으로 알려진 유승민 이한구 서병수 의원 역시 박 위원장에게 수시로 직접 조언을 하는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한때 박 위원장과 다소 소원해졌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으나 이번에 대구에서 3선 고지에 오른 데다 전략통이어서 대선가도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18대에서 낙마했다가 이번에 국회에 재입성한 김재원 당선자 역시 그동안 법률자문 역할을 전담해온 만큼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중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당대회가 다가오며 권력 선점에 밀리지 않기 위한 기 싸움도 감지되고 있어 친박계 주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북지역의 한 친박계 의원 보좌관은 “총선 이후 사석에서는 서로 자기가 공을 세웠다며 자화자찬하는 분위기가 있다. 친박 인사들 간의 측근 경쟁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보이지 않게 서로 ‘친박 핵심’이라고 내세우는 이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걱정스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보좌관은 “일각에서 ‘도로 한나라당’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친박계가 이미 대권을 쥔 양 과거 행태로 돌아가는 안이함을 보이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고 덧붙였다. 영남권 C 의원의 경우에도 이번 총선에서 친박계 핵심으로 입지를 다지긴 했으나 총선 공천을 좌지우지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경계대상으로 분류되고 있기도 하다.
정치전문가들도 박근혜 위원장이 총선을 통해 대선 주자로의 위상에 ‘정점’을 찍은 만큼 향후 친박계 관리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2002년의 ‘이회창 대세론’이 순식간에 꺼져버린 것처럼 ‘박근혜 대세론’ 역시 언제 어떤 돌발 변수를 맞이할지 모른다.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처럼 친박계 내의 자중지란이 박 위원장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박 위원장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바로 친박계”라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