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빠 때려…” 유권자 주먹이 운다
▲ 연합뉴스 |
기자가 최 씨를 만난 19일은 김 당선자 측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해명이 나온 직후였던 터라 그는 상당히 격앙된 모습이었다. 최 씨는 “김형태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만 하고 있다. 어젯밤 억울해서 한숨도 못 잤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김 당선자가 자신을 성추행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죽은 남편의 재산까지 은밀히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40세 초반 무렵 김 당선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최 씨는 현재 50세가 갓 지난 나이임에도 상당한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녹취록 전문에는 2004년 무렵 김 당선자와 그의 처, 최 씨와 그의 아들 김 아무개 씨 등이 나눈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녹취록에는 김 당선자가 조카인 김 씨에게 “큰아빠가 술을 먹고 결정적으로 실수를 했어… 마지막 남녀관계까지는 안 갔다”라고 말한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는 김 당선자가 최 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일정 부분 인정한 셈이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 측은 여전히 “음성파일은 조작된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최 씨가 돈을 노리고 꾸민 짓”이라며 일체 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나아가 김 당선자는 최 씨를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이처럼 자신의 무고함을 굽히지 않고 있는 김 당선자는 4월 20일 고소인 자격으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김 당선자는 그간의 패기 있던 모습과는 달리 ‘제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소명자료를 집에 두고 왔다’며 관련 내용을 일절 진술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했던 김 당선자가 의혹을 해소할 만한 자료나 진술을 하지 못하자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아울러 최 씨가 성추행 폭로에 이어 죽은 남편의 보상금 관련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어 김 당선자는 이에 대한 새로운 반박자료를 내놓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두 사람 간의 보상금 문제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무렵 김 당선자의 동생 김 아무개 씨(당시 39세)는 D 상선의 선장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던 김 씨를 회사 측에서 무리하게 승선시킨 바람에 건강 악화로 이어져 같은 해 3월경 위암으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최 씨에 따르면 당시 회사에선 남편의 죽음을 업무와 관련된 사망사로 처리, 3억 원을 지급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병원비 6000만 원을 제외하고 받은 보상금은 1억 2000만 원에 불과했다. 이것이 화근의 빌미가 됐다.
최 씨는 사라져버린 나머지 1억 2000만 원을 김 당선자가 편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씨는 “당시 모든 보상금 문제는 아주버님인 김 당선자에게 맡겼다. 나는 대학교 재학 중에 결혼해서 살림만 한 주부였고, 반면에 아주버님은 KBS 기자였으니까 믿고 맡긴 것”이라며 “죽은 동생의 보상금을 탐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가슴을 쳤다. 이어 그는 “김 당선자가 회사 측으로부터 1억 2000만 원으로 추정되는 보상금 일부를 받아 챙겼으며 가족들에게는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빌린 돈이라고 둘러댄 것으로 안다. 그래서 이 의원 측에 실제로 빌려줬는지에 대해 물었으나 그쪽 관계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며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녹취록에는 보상금과 관련된 대화 내용도 담겨 있다. 김 당선자는 “3억이 아니라 3000만 원이라도 내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감방 가겠다 이 말이야. (중략) 인생 이렇게 안 살았다. 내 동생 와이프하고 내 조카들한테 이런 소리 듣는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칼을 물고 죽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최 씨가 제기한 보상금 관련 의혹을 전면 부정했다.
이밖에도 녹취록에는 김 당선자가 최근 최 씨를 상대로 낸 반박성명 중 “부친에겐 제수 씨의 장남을 포함해 손자 3명의 명의로 부친 소유의 산을 등기한 것이 있었는데, 이 산이 군부대에 편입돼 보상금 각각 3000여만 원이 나왔다. 이때 제수 씨가 부모님께 일언반구도 없이 포항부대로 찾아가서 (돈을)받아갔다”는 내용과 관련된 부분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최 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저런 말을 지어낼 수 있는지 무서울 정도”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아버지가 손자 3명에게 산을 공평히 물려줬는데 포항부대 편입 문제로 어쩔 수 없이 팔 수밖에 없었고 각 가정마다 관련 문서를 작성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최 씨는 “김형태는 거짓말투성이다. 내가 3000만 원을 빌려가서 안 갚았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녹취록에는 김 당선자가 동석한 최 씨의 아들에게 “야, 큰아빠를 때려, 때리라고…”하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최 씨가 “어른이 할 행동입니까?”라고 말하자 김 당선자는 “어른 대접을, 대접 받을 짓을 못 했기 때문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처럼 녹취록에는 석연찮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지만 김 당선자는 끝끝내 자신의 결백함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적시돼 있었다.
성추행 파문과 관련해 김 당선자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다만 김 당선자의 측근으로부터 “기자 회견문에서 밝힌 내용 이외에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게 김 당선자의 입장이다. 기자회견문을 참고하라”는 답만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 지난 19일 <일요신문>과 만난 김형태 당선자의 제수 최 씨. 김 당선자가 면책 특권을 받기 전에 진실을 밝히겠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
“내가 본 거시기 모양도 아직 생생”
‘제수씨 성추행’ 논란에 대해 김형태 당선자가 18일 반박성명을 내면서 진실 공방전이 재점화되고 있다. 김 당선자의 반박에 대해 최 씨는 “(김 당선자의 주장을) 조목조목 재반박해주겠다”며 김 당선자의 면책특권이 발생하기 전에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김 당선자가 사망한 동생의 보상금을 가로채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당시 남편이 일했던 D 상선은 부산에 지사가 있고 서울에 본사가 있었다. 나는 부산 사람이라 지사에 가서 인감도장과 신분증을 제출하고 보상금을 받았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 ‘신분증과 인감도장을 제출하고 가라. 일주일 후에 돌려주겠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인데 당시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까닭에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인감도장과 신분증을 맡겼다. 그때 도장과 신분증이 서울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최근에서야 남편 동기로부터 들었다. 김 당선자가 서울 본사에서 회장과 독대한 후 1억 2000여만 원을 받아갔다고 한다.
△성추행 발생 무렵 최 씨가 먼저 쌍꺼풀 수술을 하고 서울로 찾아와 김 당선자를 유혹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남편 사망 직후 하도 울어서 눈이 축 처졌다. 눈이 처지면 팔자가 기구하다고 해서 제대로 살아볼 생각으로 쌍꺼풀 수술을 했다. 김 당선자가 1년 계약직으로 사무직을 소개시켜줬었는데 수술은 그 직전에 했다. 김 당선자가 아들 학자금 문제로 서울로 오라고 한 건 사무직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이다. 서울엔 성추행을 당한 2001년 무렵과 남편 보상금 문제를 묻기 위해 김 당선자 집을 방문하게 된 2004년도, 딱 2번뿐이었다. 그리고 김 당선자가 내게 공항에 몇 시에 오는지 물어본 후 자기 차를 갖고 직접 마중까지 나온 사람인데 내가 KBS로 여러 차례 찾아갔다고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2001년경 김 당선자가 여의도 근처 오피스텔에서 팬티만 입고 나와서는 강제로 나를 범하려고 했다. 단순한 성추행이 아니라 성폭행을 하려고 했다. 당시 김 씨에 의해 블라우스 단추가 풀어지고 입술, 가슴 등이 여러 차례 범해졌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평소 심장이 안 좋아서 당시 김 씨에게 ‘심장이 답답해요, 아주버님. 잠시만 일어나 보이소.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여러 번 호소하니 그제야 풀어줬다. 김 당선자의 성기 모양, 당시 오피스텔 구조 등도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화장대에는 여자가 쓴 흔적이 보이는 외제화장품이 놓여 있었고 드럼세탁기에는 여성용 잠옷이 걸려 있었다. 죽은 동생의 부인도 범하려고 하는 양반인데 ‘이곳을 거쳐 간 여자가 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됐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