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정해진 평면 위에 형태와 색채로 이야기를 담는 예술 형식이다. 회화가 갖고 있는 힘 중에는 형상의 힘이 있다.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이럴 경우 사물의 성질이나 형상의 특징에다 연상할 수 있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덧붙이게 된다. 사람들은 작가가 표현한 이러한 형상을 보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읽어낸다. 그 이야기는 작가가 형상을 이용해 하려던 것일 수도 있지만 보는 이가 새롭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알려진 최후의 작품 중 유명한 것으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보통 불길한 징조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는 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은 고흐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까마귀를 그림 속에 그려 넣은 것으로 해석한다. 까마귀의 검은색과 음산한 울음소리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분위기를 그리지 않고도 까마귀만으로 죽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형상의 힘이다.
박희정도 회화에서 이러한 형상의 힘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바나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조각과 회화를 병행해온 그는 오래전부터 바나나를 주요 소재 겸 주제로 삼았다. 왜 그토록 바나나에 집착하는 것일까.
“제가 어렸을 때 바나나는 비싸서 자주 먹지 못하는 고급 과일이었습니다. 달달하고 맛있는 바나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희망의 키워드로, 그리고 지금은 유익한 과일로 한바탕 웃음을 주는 행복 혹은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나나를 좋아한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과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모양은 단순하지만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형상이다. 노란색은 밝고 따스하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아왔다.
이러한 긍정적 요소를 고루 지닌 바나나는 희망과 사랑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돼온 것이다. 작가는 바나나의 이런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품에 담아내 호평을 받고 있다.
박희정은 바나나 외에도 개, 고양이, 물고기, 부엉이, 원숭이, 그리고 노란색을 상징해온 해바라기를 소재로 사람들의 보편적 희망 사항을 표현한다. 이런 소재들은 대부분이 상징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재물과 성공, 장수와 건강 같은 것이다. 작가는 형상의 힘을 통해 희망을 심는 회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