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은 김치와 된장이다. 이것의 독특한 맛은 발효에서 나온다. 혀끝에서는 거칠어 금방 녹아들지 않지만 오래 씹을수록 혀 속 깊숙이 머무르며 우러나오는 깊은 맛. 그래서 여운이 오래 가는 것이 발효의 맛이다.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익히고 만들어 민족의 인자처럼 돼버린 생활의 맛이다. 이 맛이 다스려낸 감성이 우리 미감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된 고졸함이다.
이런 미감의 대표적인 화가가 박수근이다.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맛이 발효와 닮았다. 사발에 담아 마시는 막걸리나 뚝배기에 끓여낸 된장찌개 같은 맛이다. 그래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그림이 됐고, ‘국민화가’로 불리는 것이다.
김월숙의 작품에도 고졸함이 맛깔스럽게 스며 있다. 마치 할머니나 어머니가 평생 써온 장롱이나 반짇고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맛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오래 입은 한복 같은 느낌이다. 낡고 닳아버린 생활의 흔적도 보인다. 소재가 한국적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꼼꼼하게 살피지 않으면 진부한 전통 회화같이 보인다. 전통을 재현한 공예품처럼 보인다.
한국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겠다고 나선 작가들이 흔히 빠져드는 함정이 있다. 소재주의가 그것인데, 전통 이미지와 기법을 가져와 자신의 작품 속에 심는 것이다.
그러나 김월숙의 작품에서 우러나오는 한국적 아름다움은 소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그림을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 공들여서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월숙은 한지로 갑옷을 만들던 전통 공예 기법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물에 적신 한지를 짜내고 여러 겹 겹쳐 튼실한 옷을 만드는 방법인데, 이렇게 만드는 한지를 ‘줌치 한지’라고 한다. 줌치 한지를 캔버스 삼아 전통 천연 염색기법으로 얻어낸 옷감으로 구성을 한다. 도자기나 꽃, 화분, 나무와 달 등을 옷감으로 만들고 이를 바느질 기법으로 한지 위에 배치하는 작업이다.
그의 작품에 주조를 이루는 색채는 갈색 톤이다. 검정이나 붉은색, 푸른색도 쓰이는데, 전반적인 색채에서 가라앉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탁하지 않고 맑은 기운이 감돈다. 은근한 조화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색채의 운용이 일품이다. 자연 염료로 얻은 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월숙의 화면에서는 깊은 울림이 배어나온다.
그의 그림은 첫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보면 볼수록 깊게 빠져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흡사 속 깊은 오랜 친구를 보는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고졸한 아름다움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