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람 놓고 장례 운운”
▲ 김태촌. 유장훈 기자 |
김 씨는 동생의 위독설이 보도된 이후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를 운운하는 경우가 어딨냐”며 호소문을 통해 오보라는 사실을 밝혔지만 위독설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김 씨는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와 함께 김 씨는 인터뷰를 통해 동생이 병으로 쓰러지게 된 원인과 그동안의 억울한 사연도 털어놨다.
김 씨는 “그동안 (무혐의 처분받은) 권상우 사건이나 억울한 일이 많았지만 이번만큼 억울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병원을 찾은 5월 4일에도 김 씨는 지인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해명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김 씨는 “동생이 발이 넓어서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온다. 정말 심각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내가 ‘걱정마라. 내일이면 얼굴 볼 텐데 무슨 소리냐’고 말했다”며 위독설 보도 이후 가족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김 씨는 “동생의 위독설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 했다. 흥분을 가라앉힌 김 씨는 동생이 쓰러지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김 씨는 “동생의 병세가 악화된 것은 대구에서 경찰조사를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갑상샘 치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태촌 은 올해 2월 말 기업인 협박 혐의로 대구지방경찰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 김태촌 씨의 누나 김숙자 씨는 ‘김태촌 위독설’에 대해 반박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김태촌은 그동안 폐암 수술과 폐결핵 치료로 폐 상당부분을 잃고 3분의 1가량만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단지 회복 속도가 느릴 뿐 위독설과 달리 김태촌은 혈색도 돌아오고 많이 회복돼 조만간 일반병실로 옮길 것이라고 김 씨는 설명했다. 하지만 김 씨는 취재진의 거듭된 요구에도 김태촌에 대한 사진촬영 및 의료진의 공식적인 확인을 거부했다.
김 씨는 그동안 조직폭력배 두목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동생이 억울한 오해를 많이 당했다며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1988년 청소 교도소에서 복역할 때 김태촌은 폐암 말기였다고 한다. 자꾸 아프다는 동생의 말에 김 씨는 교도소에 ‘민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교도관은 “폐암이면 책임진다”며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김 씨의 호소 끝에 Y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김태촌은 폐암말기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누나 입장에서는 억울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김태촌에 대한 폐암말기 진단이 허위였을 개연성이 높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1990년 김태촌의 폐암 판정 경위를 수사했던 서울지검 강력부 고위간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태촌은 1988년 Y 대학병원에서 향후 1~2년밖에 살지 못한다며 폐암3기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암 적출물 등 의학적 증거가 부족하고, Y 대학병원에 장기입원하면서 의사에게 행패를 부린 정황도 드러났었다”고 밝혔다. 당시 김태촌의 폐암 판정 경위에 대한 수사는 폐암이 아니라는 결정적 자료가 부족해 내사 종결됐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