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 고단함 덜던 ‘어로요’, 축제의 노래가 되다
좌수영어방놀이는 말 그대로 조선시대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경상도 좌수영)에 있었던 민-군 공동 어로 조직인 어방(漁坊)에서 비롯된 민속놀이이다. 당시 어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어로 행위와 어로요(고기잡이 작업 노래)를 재현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 수영 지역은 조선시대에 동해안과 남해안 일원을 방어하던 수군의 최상부 군영인 경상도 좌수영이 약 300년간 자리했던 곳이다. ‘수영’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수영 일대에서는 예부터 재래식 후릿그물로 멸치 등을 잡는 어업이 활발했다. 그물의 한쪽 끝줄을 육지에 둔 채, 배로 그물을 바다에 넓고 둥글게 둘러친 다음, 나머지 끝줄을 육지로 가져와 여러 사람이 그물의 양 끝줄을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특히 무거운 그물을 당길 때엔 일손이 많이 필요해 어촌 주민들이 남녀노소 모두 나와 힘을 보탰다고 한다.

어부들은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군사들에게 고기잡이 방법을 전해주고, 군사들은 일손이 달리던 어부들을 도와 그물을 당겨 주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어부들은 더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고, 군사들은 힘을 보탠 만큼 물고기와 해산물을 얻으며 부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양측의 협업이 성과를 나타내자 마침내 제도화되면서 어부들과 수군의 공동작업 체계인 ‘어방’이라는 기구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어방의 구성원들은 고기잡이를 할 때에 일손을 맞추어 능률을 올리고 노동의 고단함을 덜고자 여러 가지 어로요를 불렀다. 좌수영어방놀이는 당시 고기잡이를 하며 노래를 부르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어로요의 종류에 따라 세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어방놀이를 연행할 때에는 악사들과 함께 어부들, 아낙네들 등이 놀이꾼으로 출연한다.

놀이를 하기에 앞서 용왕에게 고사를 먼저 지낸다.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는 기원과 어부들의 안전을 비는 의식이다.
첫째 마당은 ‘내왕소리’라 하는데, 어부들이 줄틀에 매달려 고기잡이에 쓸 굵은 밧줄을 꼬면서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다. 이 줄꼬기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지루하기 때문에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노동의 지루함을 견뎌냈다고 한다. 앞소리꾼과 줄꾼들이 사설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주고’ ‘받고’ 하는 것을 ‘내왕’이란 말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셋째 마당의 칭칭소리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춤을 곁들인 풍어놀이로, 올해의 풍어에 감사하고 이듬해의 풍어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칭칭소리의 노랫가락은 영남지방에서 흔히 불리는 ‘쾌지나칭칭나네’의 가락과 같다. 이 마당에서는 모든 악기(꽹과리 징 북 장구 호적 등)가 다 동원되고 놀이꾼과 마을사람들, 구경꾼들이 한데 어울려 원형을 지어 빙빙 돌면서 춤추고 논다. 이때 앞소리꾼이 선소리를 메기면 사람들은 모두 “쾌지나칭칭나네”라고 즐겁게 합창으로 받는다.

일제강점기 이후 맥이 끊겨가던 좌수영어방놀이는 수영고적민속보존회 이사장이었던 고 정대윤 선생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과 원로 예인들의 노고 덕분에 복원될 수 있었다. 이들은 좌수영어방놀이를 재현해 내어 197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이 놀이가 197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현재 좌수영어방놀이는 명예예능보유자 김정태, 예능보유자 김태롱 선생을 중심으로 ‘좌수영어방놀이보존회’가 전승의 맥을 잇고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