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이던 교사가 학부모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학생에게 주먹질을 당했다. 몸보다 자존심이 더 피를 흘릴지도 모른다. 그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세상이다. 검찰은 선생을 때린 학부모를 벌금형의 약식기소로 처리했다. 교권의 침해는 고려하지 않았다. 일반 공무원에 대한 폭행은 공무집행방해죄가 되어 엄하다. 선생에게 주먹질을 한 학생사건은 서로 오해가 있었다는 명분으로 화해를 시켰다고 한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겪은 아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생각할까. 권위를 깔아뭉개고 폭력을 써도 돈 몇 푼이면 다 해결된다고 배우지 않을까?
자존심을 지켜야 제대로 기능을 하는 직업이 있다. 교육과 법에 종사하는 전문가집단이 그렇다. 고교 시절의 일이다. 영어선생님이 재벌 사모님의 과외부탁을 끝까지 거절했다. 과외를 할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교육적 양심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각 반을 다니면서 모두에게 숙제를 냈고 해오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공평하게 매를 때렸다. 재벌 집 아이는 공교롭게도 영어시간만 되면 얻어맞았다. 재벌 사모님이 선생을 찾아와 멱살을 잡고 소리소리 질렀다. 선생은 교사직을 걸고 그 막돼 먹은 학부모로부터 기어코 사과를 받아냈다.
자존심을 먹고 사는 또 다른 직업은 판사다. 전두환 정권 시절 시국사건의 재판정은 엉망이었다. 판사들을 향해 욕과 고성이 터지고 고무신이 날아갔다. 당시 한 판사가 내게 고민을 얘기했다. 그들의 저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지만 법치주의를 위해 대한민국 법정의 권위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얻어맞더라도 판사석에 그대로 앉아 있겠다고 했다.
힘든 시절에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자존심이 민주화가 되고 법치주의가 확립된 요즈음 스스로 팽개치는 모습을 더러 본다. 정당원들이 경찰차를 파괴하는 신문사진을 본다. 당사가 해방구가 되고 법의 자존심은 쓰레기통으로 갔다. 방송국도 그랬다. 피디수첩 사건 당시 노조원의 방해로 검찰은 압수수색도 못했다. 조사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법정에서 심문조차 못했다. 결과는 무죄였다.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법과 교육영역이 이상기후에 빙하가 쪼개져 무너져 내리듯 침몰하고 있다.
원인은 있다. 교사가 교사답지 못하고 법률가가 정의의 편에 서지 못해서 그런 면이 있다. 권위와 법이 무너진 틈 사이로 이기주의와 무질서가 잡초같이 돋아난다. 일부의 부패가 전부로 매도되고 바른 사람들까지 덩달아 쥐구멍을 찾는다. 경제만이 다가 아니다.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교권과 법의 권위가 제대로 서야 한다. 그 방법은 종사자의 자존심을 찾아주는 거다. 아이들의 영혼에 좋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좋은 선생님을 가려 잘 대접해 줘야 한다. 정의로운 법집행이 추상 같은 풍토가 되도록 해야 한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