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맞아보니 아프더냐’
지난 5월 16일 우리은행은 미국 뉴욕주 연방법원에 미국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를 상대로 400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은행은 2005년부터 이들이 판매한 파생상품에 가입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부분 투자금을 날렸다. 15억 달러가량(약 1조 8000억 원)을 전부 손실 처리했다. 우리은행 출범 후 최대 손실 규모. 이 때문에 2009년 금융감독원의 기관경고를 받았으며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수십 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번 소송은 이때 본 손실에 대한 것이다. 승소한다면 추가 소송도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은행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소송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부터 논의해온 것”이라며 “이사회 승인을 거치고 법무대리인을 정하는 등의 준비를 마치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미국 씨티은행 등의 ‘불완전 판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씨티은행 등이 우리은행에 파생상품을 팔면서 관련 사항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 것이 큰 이유”라며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우리은행의 이 같은 소송과 이유는 다른 그림을 오버랩시킨다. 지난 2008년 주식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키코 사태’가 그것이다. 키코(KIKO)는 2006~2007년 은행들이 주로 수출 중소기업을 상대로 판매한 환헤지 파생상품.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 변동하면 이익이지만 구간을 벗어나면, 특히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면 엄청난 손해를 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환율 변동이 심해지자 키코에 가입했던 수출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직격탄을 맞았다. 키코 가입에 따른 손실액이 각 기업마다 무려 수백억 원에 달했다. 1년 매출액과 맞먹는 액수를 피해본 기업이 부지기수였다. 태산엘시디, 엠텍비젼 등 코스닥시장에서 우량기업으로 평가받던 회사들이 키코 사태로 인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키코로 인한 금융손실 때문에 부도와 상장폐지 직전까지 몰리는 기업도 있었다. 태산엘시디와 엠텍비젼의 주가는 주당 수만 원에서 수백 원으로 떨어졌다.
2010년 10월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키코 피해기업은 모두 738개사며 손실액은 3조 2247억 원이었다. 피해를 본 기업들은 ‘은행들에 사기를 당한 셈’이라며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키코 관련 민·형사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법원 판결 등을 봐도 기업들에 상품의 특성과 위험성을 충분히 알린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은행은 키코와 관련해 그리 큰 규모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공대위 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판매한 파생상품으로 손실을 본 중소기업들의 피해액은 1590억 원 규모로 공대위가 집계한 16개 은행 중 다섯 번째로 많다. 비록 공대위 소속 기업의 피해액만 따진 것이기는 하지만 적지 않은 액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