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동화라고 한다. 동화의 힘은 현실의 여러 굴레를 쉽게 뛰어넘는 데서 온다. 어린이들의 생각은 현실의 울타리가 문제되지 않는다. 이런 탓에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다.
상상력으로 포장된 동화 속에는 언제나 보편적 진리가 있고,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화는 문학의 한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동화적 문법은 회화에서도 위력을 발휘해왔다. 마르크 샤갈은 부초처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의 비극적 숙명과 정신세계를, 파울 클레는 음악적 감수성으로 분칠한 환상미를, 호안 미로는 인간 마음 맨 밑바닥에 숨어 있는 유희적 본성을, 앙리 루소는 어린이적 소박한 감성으로 바라본 세계를 동화적 문법으로 풀어내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가 되었다.
김은기의 회화도 이런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 같다. 행복, 기쁨, 즐거움, 호기심 이런 것들로 가득 찬 화면은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물로 가득 차 있다. 색채도 밝은 이미지를 주는 파스텔 톤이다. 이런 생각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재는 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꽃이다.
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에게 가장 친근한 소재 중 하나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식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물화에서도 으뜸을 차지하는 것 역시 꽃이다.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꽃을 주요한 소재로 택해 많은 화가들이 그렸고, 아예 ‘화훼’라는 장르로까지 대접받았다.
서양미술사상 꽃을 가장 독특하게 그린 이는 오딜롱 르동인 듯싶다. 그는 꽃에서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추출해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김은기의 꽃도 르동의 꽃처럼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정물로 성격을 규정할 수가 없다. 그의 꽃은 행복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상징성과 함께 장식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꽃은 정물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담기 위해 독특한 조합을 지닌다. 그가 화면에 등장시키는 꽃은 색채가 아름답고 모양이 예쁜 꽃들만 모아 놓은 꽃다발이다. 그 속에는 행복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장식처럼 담겨 있다. 어린 시절 꿈을 심어준 장난감, 동화책, 사탕 다발이나 생일케이크, 프러포즈하는 연인, 결혼식의 신부, 행복을 기원하는 축하 카드 같은 것들이다.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기대하던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김은기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느낀다면 작가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전달된 것이리라.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