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수선 집단항의 받았지만 법적공방 승소 후 ‘역고소’…벽보에 언급한 ‘대공수사팀’은 확인 안 돼
#이지성 '역공'에 불안 떠는 주민들
"OOO호 소유주는 북한의 위협을 받는 북한인권운동가입니다. 그런데 언론 보도 후 주소가 노출됐습니다. OOO호는 한 번도 아파트를 노출한 적 없습니다. 이에 대공수사팀이 아파트를 방문해 보안 점검을 했으며, 아파트 안전이 극히 위험한 상태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만약 아파트에서 북한 공작원의 테러 등이 발생하면 OOO호 책임은 전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 두 달여 동안 붙어 있는 대자보의 내용이다. '북한' '공작원' '테러' 등 위기감을 일으키는 표현에 주민들은 당혹한 기색이 역력하다. 유별난 사람의 '기행'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단순히 넘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벽보를 붙인 OOO호 소유주는 이지성 작가다. 주민들은 그가 공인에 준하는 신분인 데다, '보복'을 하려는 듯하다며 불안을 토로한다.
주민들이 보복을 의심하는 배경은 2022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작가 가족은 입주를 앞두고 대수선공사를 시작했다. 이후 진동·소음 등이 심각하다는 민원이 잇따랐다. 이 작가 집 아래층에서 측정한 소음은 92dB로 일반 공사장 허용치(65dB 이하)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진동이 심해 균열과 누수 등의 피해를 봤다는 주장도 나왔다. 수험생을 둔 한 주민은 이사를 떠났다.
입주민들은 결국 사법기관으로 향했다. 총 19세대 규모인 아파트에서 23명의 주민들이 모여 법원에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또한 경찰에 무단 대수선공사 때문에 아파트 관리 업무 등이 방해를 받았다며 집단 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초에는 아파트 이미지와 집값 등을 고려해 대화로 해결을 시도했는데 접점을 못 찾아 이같이 나섰다.
여러 언론 보도로 관심이 쏠렸으나 상황은 주민들의 기대와 정반대로 흘렀다. 법원과 경찰은 전부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이 작가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해당 공사가 그 사이 끝났고, 누수 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경찰은 방해 받은 아파트 관리 업무의 내용이 불명확하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주민들로선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공사가 마무리된 만큼 더 이상의 갈등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작가가 '북한 테러 위협' 등 경고성 벽보를 붙이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한 주민은 "공사 문제로 대립할 때도 (이 작가는) 자신이 대통령이나 장관하고도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 등 지위를 과시했다"며 "믿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가 잦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북한 위협은 사실"…줄소송 예고도
이 작가는 3명의 주민에게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2022년 집단소송을 주도한 아파트 동대표를 비롯해 균열 및 누수와 같은 피해를 주장한 주민 등이 대상이다. 해당 입주민들 때문에 이 작가 본인과 아내 차유람 씨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게 청구 이유다.
이 작가 측은 고소장에서 "원고는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한국 최고의 작가로 현재도 활발히 활동한다"며 "아내 차유람은 빼어난 실력과 미모로 아이돌 스타급 인기를 누리며 국민의힘 정당에 영입돼 차세대 여성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합법적인 공사인데 공인이란 신분을 빌미로 언론 제보 등 각종 협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동대표의 경우 실제로 집이 가압류됐다. 대수선공사와 다른 세대 균열 및 누수 등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단계에서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공사에 차질을 일으키고, 이 작가 가족의 입주도 미뤄지게 하는 등 금전적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이유다. 해당 동대표는 가압류 취소 신청에 나설 계획이다.
이 밖에 피소된 주민들도 손배소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주민은 "공사 도중에 천장이 흔들리면서 전등이 떨어지는 등 손해가 컸는데, 사과는커녕 손해배상 청구에 테러 압박까지 당하게 돼 황당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힘들어서 일도 손에 안 잡힌다"고 털어놓았다.
이 작가와 주민들의 법적 공방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주민들이 최근 붙은 벽보를 협박 게시물로 판단하고 고소를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해당 벽보에는 "동대표에 동조해 명예훼손 등 불법 행위를 한 입주민들을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작가 역시 맞대응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작가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공사였다는 사실이 이미 법정에서 확인됐다"며 "우리 가족의 명예를 훼손한 동대표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앞으로도 무고죄 등의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벽보 내용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북한의 암살 가능성 때문에 저와 아내도 부득이 집을 떠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대통령하고도 만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은 결코 한 사실이 없다"면서 "오히려 제발 만나고 싶다"고 해명했다. '벽보에서 언급된 대공수사팀이 어디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알아서 찾아보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단 일부 답변은 사실과 다르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2022년 5월 녹취록에 따르면 이 작가는 "제가 원해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한 명도 없다"며 "대통령도 만날 수 있다"고 주민들에 말했다. 이어 "행정안전부 장관, 뭐 차관도 쉽다"면서 "잘 아는 친구가 행정안전부를 핸들링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양측이 대화로 풀고자 만난 자리에서 '아파트 발전을 위해 앞으로 많이 도와 달라'는 주민 당부에 대한 이 작가의 답변이었다.
벽보에 등장하는 '대공수사팀'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테러 위협 등이 사실이라면 주민들의 신변 보호가 필요하지만, 한 주민이 경찰에 신청한 신변 보호는 두 달 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신청은 접수 받았는데 무슨 대공수사팀을 의미하는지 확인이 안 된다"며 "현재 단계에선 신변 보호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아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