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갈증’ 날 때마다 한명씩 한명씩 킬
인간인가 악마인가.
보험금을 노리고 부인과 친동생 처남을 연쇄 살해한 극악무도한 40대 남성이 검거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6월 21일 부인 등 친인척 3명을 살해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20억 원 상당의 보험금을 챙긴 혐의로 박 아무개 씨(46) 등 3명을 구속했다. 보험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엽기 잔혹 범죄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들을 상대로 연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무려 16년 만에 드러난 충격적인 패륜 범죄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봤다.
경기도 동두천 지역 폭력배 출신인 박 씨는 중고차 매매업을 하면서 조직운영자금을 충당해왔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심각한 자금난에 처하자 박 씨는 위험한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박 씨의 첫 범행은 1996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씨는 경기도 양주시의 한 주차장에서 조직 후배를 시켜 아내(당시 29세)를 목 졸라 사망케 했다. 숨진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하던 박 씨는 후배가 타고 있는 승용차와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보상금으로 1억 4500만 원을 타냈다.
보험금 수령이 의외로 쉽게 성공하자 박 씨는 약 2년 후 같은 수법으로 또다시 범행을 계획했다. 1998년 중고차 매매업을 그만두고 사채업과 주점 운영을 하던 박 씨가 두 번째 범행대상으로 삼은 사람은 놀랍게도 친동생이었다. 1998년 9월 당시 28세이던 친동생을 승용차에서 살해한 박 씨는 중앙선 침범 교통사고로 위장해 6억 원 상당의 보험금을 챙겼다.
조사결과 박 씨는 친동생을 살해하기 두 달 전 동생 명의로 3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수령자를 자신으로 지정해 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특히 완벽한 사망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에어백이 장착되어 있던 동생의 대형 승용차를 범행에 앞서 소형 구형 승용차로 바꾸기도 했다.
이미 아내와 동생을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지만 박 씨의 범행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박 씨는 이미 죄책감을 잃어버린 살인기계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친동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씨는 버젓이 재혼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돈에 눈이 먼 박 씨의 범행은 새로 맞이한 부인의 가족에게도 이어졌다. 세 번째 범행대상은 1998년 재혼한 아내의 남동생이었다. 2006년 4월 박 씨는 손아래 동서와 공모해 처남을 둔기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양주시의 한 교각을 들이받고 교통사고로 처남이 사망한 것으로 꾸몄다. 박 씨는 처남을 살해하기 한 달 전 처남 명의의 보험상품 3개에 가입하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수령자를 본인이 아닌 장모로 지정해 놓는 교묘함을 보였다. 하지만 보험가입 후 장모 명의의 통장을 몰래 개설해 놨던 박 씨는 처남의 보험금으로 나온 12억 5000만 원의 거금을 고스란히 가로챌 수 있었다.
조사결과 박 씨는 피해자들의 책임소재를 떠나 사고가 발생하기만 하면 상당한 고액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종류의 보장성 보험만을 골라서 가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0년 동안 세 차례의 범행으로 박 씨가 수령한 보험금은 총 20억 원에 달했다.
박 씨가 수차례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고도 별 어려움 없이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들이 보험 가입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보험설계사를 통해 보험에 가입했고, 그로 인해 본인 확인절차가 생략됐기 때문이었다. 특히 친인척의 경우 보험가입 과정이 비교적 허술하다는 점도 노렸다.
박 씨는 인터넷 게임을 통해 알게 된 내연녀의 남편도 같은 수법으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고 있다. 피해자는 18주간 치료를 요하는 중상해를 입고 2년간 입원해야 했고, 5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천륜을 버리고 손에 쥔 보험금으로 40평대 아파트 2채를 구입하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박 씨가 ‘악마’의 실체를 감춘 채 철저히 이중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의 장모는 박 씨를 ‘착하고 훌륭한 사위’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완전범죄는 존재할 리 없었다. 16년 전 처음 시작된 박 씨의 범행은 우연한 계기로 경찰 귀에 들어가게 된다. 1996년 아내를 상대로 첫 범행을 계획할 당시 박 씨로부터 범행을 사주 받았었던 지인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다른 범죄로 수감생활을 하던 박 씨의 지인은 지난 3월 박 씨의 보험 범죄 관련 내용을 경찰에 털어놨고, 의심스런 정황이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은밀히 내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4개월에 걸친 통신수사와 계좌추적, 보험관계인 수사 등을 거쳐 경찰은 박 씨의 범행을 확신하게 됐다. 아내와 동생, 처남 등 친인척 명의의 고액 보험에 박 씨가 보험료를 냈고 피해자들이 사망한 이후 박 씨가 20억 원 상당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박 씨는 수령한 보험금을 여러 곳의 계좌로 분산 이체해 놓고 18억 원 상당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경찰 내사 과정에서 과거 박 씨 주변인물들이 당한 교통사고를 재연하고 역추적해 본 결과 수상한 점이 다수 발견됐다. 처남 사망과 관련된 자동차 충돌 테스트 결과에서는 사고 당시 추정 속도로는 조수석에 탄 처남이 사망에 이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결과도 나왔다. 또 거액의 보험금이 지급된 내역을 수상하게 여긴 보험사도 박 씨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의 엽기적인 범행은 결국 덜미가 잡혔다.
하지만 박 씨는 현재 공소시효가 지난 첫 번째 범행과 살인미수에 그쳤던 내연녀 남편 살인미수 범행만 시인하고 나머지 범행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특히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거부하는 등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동시에 담당 형사를 협박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데다가 증거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사고사’로 묻힐 뻔 했던 이 엽기적인 사건은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전방위적인 수사로 인해 그 끔찍한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