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일정표엔 라운딩·마사지만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미래저축은행 내부문서에 따르면 미래저축은행 관계자들이 퇴직연금 가입을 대가로 관계 은행들로부터 해외원정 골프접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저축은행 관계자와 은행 관계자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도 드러났다. 문건에는 저축은행뿐만이 아니라 일반기업들도 접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금융계에 이 같은 로비가 만연돼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은행이 부실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 해외로 골프 원정을 다녀온 저축은행 관계자들의 해외원정 골프 로비 실태를 추적해 봤다.
미래저축은행 관계자들이 퇴직연금 프로그램 가입을 명목으로 관계 은행들로부터 해외 원정 골프접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9년 2월 미래저축은행은 직원들의 퇴직금 제도를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하며 증권사 세 곳과 보험사 한 곳 그리고 은행 두 곳 등 총 6개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퇴직연금제도란 직원들의 퇴직금을 회사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 맡겨 뒀다 퇴직 후 직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이에 앞서 지난 2008년 10월 미래저축은행은 퇴직연금제도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이른바 컨설팅을 시행했다. 컨설팅에는 사업자에 선정된 6개 업체 중 3곳이 참여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들은 그중 A 은행으로부터 골프접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A 은행 해외 포럼 일정표. 2박 3일간 호텔 투숙, 골프 라운딩, 마사지로만 채워졌다. |
또 안내문에는 우승 및 준우승을 비롯해 12개로 이뤄진 시상 목록이 나타나 있었지만 실제로 어떤 상품이 지급됐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결국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앞두고 미래저축은행이 시행한 컨설팅이라는 것이 골프접대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퇴직연금제도 사업자로 선정된 것 외에 저축은행 관계자들을 접대하고 A 은행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대출이었다. 퇴직연금제도 사업자 선정 후 골프접대를 받은 저축은행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A 은행 대출을 알선했다. 지난 2009년 6월 미래저축은행 경영지원팀은 ‘퇴직연금제 도입에 따른 직원대출 상환 방안’ 관련 문서를 각 부서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서의 내용의 골자는 ‘현재 본사에서 직원대출을 받고 있는 직원들에게 퇴직연금제 도입과 함께 퇴직금 담보 연결 직원대출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개별 신용대출을 주선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문서에는 A 은행이 제시한 대출상담 및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나타나 있었다. 대출을 알선하는 과정에서 강제사항이나 불이익 등은 없었지만 골프 접대를 받은 저축은행 관계자가 나서 관계 은행의 대출을 알선하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 심사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수기로 처리된 대출 내역. |
무엇이 억울했기에…
지난 5월 영업정지를 앞둔 시점에서 김찬경 회장이 해외도주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자 검찰은 미래저축은행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문제는 수사 도중 저축은행 여신담당이자 김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김 아무개 상무(여·50)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김 상무가 쓴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내가 의심을 받는 게 억울하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앞서 김 상무는 자살 하루 전 검찰에 출석해 ‘김 회장으로부터 받은 카지노 매각대금 20억 원’에 대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김 상무가 비리 의혹에 대해 억울한 심정을 죽음으로서 나타낸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일요신문>이 입수한 미래저축은행 내부 문서에 따르면 실제로 미래저축은행의 대출에는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작성된 ‘여신심사 데이터 검증’ 자료를 보면 2009년 6월~2011월 3월 사이 대출심사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수기로 처리된 대출건은 무려 170여 건이 넘었다. 금액도 34억 원에 달했다.
미등록 심사 시스템을 통해 대출받은 업체에는 지방 언론사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이 자료는 한 지점에서 나온 데이터라는 점에서 전 지점의 자료를 살필 경우 수기 처리된 대출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도 보증인과 대출인이 서로 맞보증을 서는 사례도 발견됐다. B 회사가 대출을 받으면 C 회사를 보증인으로 세우고, 나중에 C 회사가 대출을 받을 때 B 회사가 보증을 서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는 “보통 맞보증 경우 은행에서는 양쪽 다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대출 승인을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같은 날 한 사람이 두 명의 직원을 보증인으로 세워 각각 대출을 받은 사례도 발견됐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는 “미등록 여신이나 맞보증 등 모두 차명대출이 의심 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미래저축은행의 모든 여신 관련 최고 담당자가 바로 김 상무였다는 점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결국 여신을 담당하는 김 상무가 이런 부실·불법 대출 관련 사실이 밝혀질 경우 김 회장의 비자금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 추궁 당할 것을 우려해 그런(자살) 선택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놨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