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옷 대신 삼성옷 입고 뛴다
▲ 6월 2일 호암상 시상식에서 제일모직 자사 신규 브랜드 ‘에피타프’ 의상을 착용한 이서현 부사장.임준선 기자 |
꼼꼼한 시장 평가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브랜드를 알려가던 제일모직이 모습을 확 바꿨다. 목 좋은 곳이라면 먼저 자리를 꿰차며 공격적인 마케팅 자세로 돌변했다. 이서현 부사장의 야심작이라 불리던 ‘에잇세컨즈’도 당초 5개의 매장만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반응에 올해 말까지 12개 매장을 오픈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빠르게 성장하며 해외 브랜드와의 정면승부도 불사하는 모습이다.
새로운 브랜드 론칭도 마다하지 않는다. 포화상태라던 아웃도어 시장에도 진출해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해외 브랜드를 수입하는 대신 자체 브랜드를 키우며 성장 동력 확보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 이 부사장의 화끈한 지원도 뒷받침 되고 있다. 국내 최고의 ‘파워 셀러브리티(Celebrity·유명인사)’로 손꼽히는 이 부사장이 직접 자사 브랜드를 착용하며 브랜드 알리기에 몸소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석상에서는 수입브랜드만 착용하던 이 부사장은 지난 6월 2일 ‘2012 호암상 시상식’에서는 제일모직의 신규 브랜드인 ‘에피타프’ 의상을 착용해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 부사장이 발로 뛰자 측면지원도 아낌이 없다. 개인적으로 자녀들과 엮이는 일이 드물었던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리움 관장이 이 부사장과 공동명의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부동산을 매입한 것. 매입대금은 토지 250억 원에 건물 50억 원으로 총 300억 원이며 토지는 두 사람이 5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건물은 이 부사장이 75%를 소유하고 있다. 매매계약은 2월 17일에 체결됐으며 잔금 납부와 등기이전은 지난 5월 18일에 마무리됐다.
인근 부동산중개업 관계자는 “이 부사장이 한남동 대로변에 보유하고 있는 건물이 부족한 것 같다는 말을 하자 홍 관장이 나서서 매입을 했고 곡절 끝에 공동명의로 한 것으로 안다”며 “그 건물을 사겠다는 회사들도 많아 경쟁이 치열했다. 현재 아우디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계약이 올 12월이면 만료 된다. 그때 되면 뭔가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몇 년 사이 삼성그룹이 이태원로에 많이 진출했다. 이번에 사들인 건물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삼성 계열사들이 흩어져 있다. 위로는 제일기획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고 삼성 계열사가 짓고 있는 건물만 해도 2개 이상”이라며 “길 이름조차도 ‘이태원 꼼데가르송길’이라 불릴 만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땅값이나 집값도 상승세”라고 전했다.
이에 제일모직 관계자는 “이번에 매입한 빌딩 바로 옆에 완공 단계인 건물이 있다. 전반적으로 사업이 확장되면서 사무공간이 부족해 새로운 건물을 지었는데 대부분은 이러한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라며 “판매용으로 사용할지는 논의된 사항도 없고 어떤 브랜드가 입점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다 지은 건물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는 마당에 오너 개인이 구입한 빌딩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혀 모른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한남동에서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이서현 부사장이 어머니와 공동명의로 매입한 한남동 부동산. 작은 사진은 제일기획(왼쪽)과 제일모직 빌딩.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더욱이 이 부사장은 사촌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신세계인터내셔날(SI)과 ‘청담 대전’에서 한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 이 부사장이 강남 청담동 건물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미 주요 부지는 SI가 선점하고 있었던 것. 이미 부동산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랐던 탓에 SI와 균형을 맞추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이 부사장은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매입한 건물에 제일모직이 수입한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방식으로 매장을 늘리기도 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 부사장이 청담동에서는 아버지를 등에 업고 영역을 확장하더니 한남동에서는 어머니의 지원을 받는 모양새”라며 “청담동은 고급 이미지만 강한 반면 한남동은 여기에 ‘개성’도 입혀진 공간이라 다들 주목하고 있다. 최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제일모직이 한남동의 이미지를 입고 도약하려는 의지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청담동에서는 다소 밀렸지만 한남동만큼은 이 부사장이 앞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제일모직과 더불어 이 부사장이 공들이고 있는 제일기획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이 부사장의 취임 이후 국내외에서 뛰어난 실적을 거두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국제광고대회에서 한국 업체로는 최초로 그랑프리(대상)를 차지했으며 올해도 첫날에만 6개의 상을 휩쓸며 광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제일기획의 상승세에는 글로벌화를 중시하는 이 부사장의 경영지침과 더불어 파격적인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제일기획의 한 내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오너일가가 경영에 참여하면 자연스레 인지도도 올라가고 내부적으로도 고무되는 부분이 있다. 더욱이 이 부사장은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성과를 내면 파격적인 보상이 주어지니 누가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 제일기획을 세계적인 회사로 만든다는 목표 아래 인수합병에도 적극적이라 앞으로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