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거위 ‘3종 세트’ 돈맥경화 심각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특히 이 같은 현상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의 경영난은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장 부침에 따라 경영성과도 출렁일 수밖에 없는 천수답 식 사업구조가 문제지만, 그렇다고 당장 뾰족한 대책도 없다. 가뭄에 타는 농심만큼이나 쩍쩍 갈라지고 있는 ‘증심’ 속을 들여다봤다.
먼저 국내 증권사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증시 거래대금을 보자. 2010년 하반기 이후 줄곧 8조 원 이상을 넘던 일평균 거래대금(코스피와 코스닥 합계)은 올 들어 급감하기 시작해 5월에는 6조 원마저 깨졌다. 6월 들어서는 일평균 5조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온라인 주식거래가 보편화되고, 정부의 수수료 인하 압력 탓에 주식위탁매매 수수료율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교보증권에서 조사한 국내 증권사의 주식위탁매매 수수료율은 1999년 평균 0.328%에서 2009년 0.115%로 떨어졌고, 2011년 말에는 0.094%까지 추락했다.
증시 시가총액과 수수료 수입도 반대로 움직였다. 1999년 350조 원 규모이던 증시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1042조 원으로 3배가량 늘었지만 수수료율은 3분의 1토막도 더 났다. 온라인 주식거래 활성화로 거래횟수가 늘어난 반면 수수료율이 훨씬 높은 오프라인이나 전화주문이 크게 줄어들며 투자자들의 총 수수료 지출액을 늘리지 못했다.
그 결과 국내 증권사의 위탁수수료 수익은 1999년 8조 원에서 지난해 채 3조 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숫자가 10년 새 30여 개에서 50개 이상으로 늘어나다 보니 수수료율 인하를 통한 출혈경쟁이 일반화됐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전 외형을 잔뜩 늘려 놓으면서 인건비 및 고정비 부담이 커졌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국내 증권사들은 주식위탁수수료 외에 다른 수익원들을 발굴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유자산운용과 금융투자상품 판매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이마저 마땅치 않다.
먼저 고유자산운용을 보자. 증권사들은 자기자본 등 고유자산을 투자해 수익을 거둔다. 주식의 경우 투자위험이 크다 보니 금융당국의 규제가 심하다. 이 때문에 주로 채권, 그것도 국공채 투자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이는 결국 채권시황에 따라 증권사 실적이 크게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됐다.
채권은 주식과 반대로 시장금리가 내릴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채권에 투자하는 증권사로서는 채권금리가 오르면 손실이, 내리면 이익이 나는 구조다. 그런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전 6%에 육박했던 국고3년 채권금리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글로벌 유동성 공급으로 2009년 4%대, 2010년 하반기 이후에는 3%대까지 떨어진다. 그리고 이 기간 증권사들은 큰 이익을 내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대부분 벗어난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금리가 제자리걸음이다. 국고채 3년 금리와 한국은행 정책금리 3.25%의 차이가 0.06%포인트에 불과할 정도다. 하루짜리 금리와 3년짜리 금리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쉽게 말해 채권가격이 꼭지에 다다른 셈이다. 값이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증권업계에서 자기자본이 가장 큰 대우증권의 경우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자기자본투자를 담당한 GFM사업부의 분기순이익은 55억 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288억 원 급감했다. 주식위탁매매가 대부분인 소매(Retail)사업부의 순이익이 같은 기간 854억 원에서 453억 원으로 반 토막 난 것과는 감소폭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깊다. 그만큼 치명적이었다는 뜻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정책금리가 더 떨어질 가능성도 낮고, 더 떨어진다고 해도 낙폭은 크지 않아 채권시장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전망했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증권사의 콜자금 차입을 규제한 것도 상당한 경영압박이 되고 있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가장 싼 금리인 콜금리로 자금을 빌려와 이를 국공채에 투자해 차익을 남겨왔다. 연 3.25%의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와 연 3.5~4%대 국공채에 투자해 0.25~0.5%포인트가량의 차익을 남기는 방법이다.
그런데 콜자금은 매일 만기연장을 해야 하는 초단기 자금. 반면 국공채는 적개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씩 투자해야 한다. 콜자금 만기연장이 만약 제때 안 되면 보유한 국공채를 급매해서 돈을 갚아야 하는데, 이게 여의치 않을 경우 부도가 날 수 있다. 이를 ‘만기불일치’라고 한다. 금융시장이 악화되면 이런 경우가 발생할 우려 때문에 당국이 규제에 나선 것이다.
익명의 증권사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증권사들은 크건 작건, 신용도가 좋건 나쁘건 모두 콜 시장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자금을 빌려왔는데, 이제는 규모와 신용도에 맞게 차별화된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와야 한다”며 “대형사의 경우 연 1~2%포인트, 중소형사는 최대 2배가량의 비용부담이 생긴다. 결국 기존에 싼 콜자금을 빌려와 손쉽게 차익을 남기던 투자 자체가 어려워진 셈”이라고 귀띔했다.
증권사들의 또 다른 핵심 수익원인 금융상품 판매도 위기에 봉착했다. 2004~2007년까지 펀드 열풍으로 1억 원당 100만 원 이상의 수수료를 챙겨오던 증권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펀드 자금이 이탈하면서 수익이 급감했다.
이후 랩어카운트, 주가연계증권(ELS) 등을 펀드의 대안상품으로 판매하면서 수익을 만회했지만 요즘엔 이마저도 시원치 않다. 랩어카운트는 주로 판매사를 통한 주식주문이, ELS는 투자원금의 약 1%에 달하는 판매수수료가 수익원이다. 그런데 랩어카운트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이 몰락하면서 펀드와 같이 ‘미운 오리’가 됐고, ELS도 최근 증시 급락으로 원금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판매가 주춤하다. 여의도 증권가에 ‘돈비’가 내릴 예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