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 선물’ 고맙지만 부끄럽네요
▲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어렸을 때는 30이란 숫자가 너무 많은 나이인 것 같고, 나랑은 큰 인연이 없을 듯했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전 어느덧 서른 살이 되었고 세 아이의 아빠가 돼 메이저리그 생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서른 살보다는 서른한 살이, 서른한 살보다는 서른두 살이 더 즐겁고 행복할 거란 사실입니다. 왜냐고요? 제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게 틀림없으니까요^^.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아주 잘 쉬었어요. 아이들과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고 집에서 쉬고 먹고 놀면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원정 경기를 위해 팀에 합류하니까 구단에서 의미 있는 ‘선물’을 안겨주네요. 바로 클리블랜드 팀 내 전반기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는 메시지였습니다. 79경기에 나와 타율 0.299에 10홈런 34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다고 홈페이지에도 기사가 떴는데요, 솔직히 기분은 좋으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록과 관련된 숫자를 떠나서 초반에 너무 부진했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잘 극복해낸 데 대한 위로와 격려의 선물이 아닌가 싶어서였어요.
게임이 잘 안 풀릴 때는 삼진이나 내야 땅볼로 아웃되는 상황들이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두 경기에서 안타가 없다 해도 실망하지 않는 강심장이 되었어요. 오늘 경기를 망친다면 또 다른 경기에서 그 망친 부분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요.
토론토와의 2차전 때 상대 선발이 애런 래피였어요. 애런 래피는 2010년까지 클리블랜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였습니다. 그 선수와 한 팀에 있을 때는 전 그 선수의 뒤통수만 보고 수비를 했습니다. 애런 래피는 마운드에서, 전 외야에 서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처음으로 애런 래피를 마주보고 서서 그의 공을 상대로 스윙을 하다 보니 잠깐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애런의 공은 그리 빠르지 않지만 탁월한 완급 조절 능력을 선보이며 피칭하는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애런 래피를 상대로 2루타를 쳤는데, 경기 후 그 선수가 나한테 농담 삼아 한 말이 이러했습니다. “추, 네가 어떻게 나를 상대로 2루타를 칠 수 있는 거지?^^”
이제 후반기 출발선에서 힘찬 레이스를 시작했습니다. 전반기 때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지는 후반기 일정에도 분명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녹아있을 겁니다. 어떤 사연들이 제 야구 인생을 채워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전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