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출금 중단에 사무실 폐쇄되자 ‘먹튀’ 논란도…협력사 B&S홀딩스 손실에서 촉발, 액수는 조사중
가상자산 운용사는 흔히 De-Fi(탈중앙화 금융)의 반대인 Ce-Fi(중앙화된 가상자산 금융사)로 불린다. 가상자산 운용사는 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고객이 가상자산을 맡기면 이를 투자에 활용하거나 대신 스테이킹(블록체인 검증에 활용해 보상받는 것)을 해주며 낸 이익을 고객과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운용사가 쓰는 투자 방법은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수학과 통계를 기반으로 전략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하는 퀀트 투자나 아비트라지(차익거래)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은 갖고 있는 현금을 은행에 예금하고 이자를 챙긴다. 가상자산 투자자는 갖고 있는 가상자산을 De-Fi나 Ce-Fi 등 운용사에 맡기고 이자를 받는 방식을 택할 수 있었다. 특히 몇몇 업체는 스테이킹 기능이 없는 비트코인도 예치해 이자를 지급해 주목받았다.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는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을 운용사에 맡기면 추가 수익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인증받은 Ce-Fi는 정체 모를 De-Fi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하루인베스트(하루)는 높은 고정 이율로 고객을 모았다. 약정 기간에 따라 달랐지만 비트코인은 최대 11%, 이더리움은 최대 10.5%, USDT, USDC 등 달러 페깅 스테이블 코인은 최대 11% 등 1년 10% 이상 이자를 보장했다. 또한 하루라는 이름처럼 일 단위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었다. 하루 운용 자산은 5000억 원에서 1조 원 정도로 평가받는다.
델리오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및 가상자산사업자(VSAP) 신고를 완료한 국내 가상자산 전문 기업으로 금융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의 인가를 받은 사업체로 홍보했다. 2022년 2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가 된 델리오는 금융당국이 공인한 가상자산 예치·렌딩 1호 사업자를 내세우며 고객 모집에 나섰다.
이후 가상자산 수시 입출금 계좌 서비스인 ‘델리오뱅크’를 출시하면서 ‘크립토뱅크’를 표방했다. 크립토뱅크는 파킹통장처럼 가상자산을 잠시 예치해도 이자를 받을 수 있고, 가상자산을 바탕으로 일반 은행처럼 현금 예금·대출·이체·출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델리오 역시 최대 10% 이상의 이율을 보장하는 서비스를 내놓으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델리오 운용 자산은 2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가상자산 운용사들에 문제가 생긴 건 6월 13일이다. 이날 하루는 갑작스러운 입출금 중단을 선언했다. 13일 하루는 블로그를 통해 “최근 그동안 협력하던 서비스 파트너사 중 한 곳이 문제가 생겨 해당 이슈에 대해 조사 중이며 상황을 바로잡을 계획”이라면서 “현재 보관 중인 사용자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13일부터 추가 공지가 있기 전까지 모든 입출금 요청을 중단한다. 곧 블로그에 세부 사항을 더 밝히겠다”고 공지했다. 하루 모회사 블록크래프터스가 입주한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은 폐쇄됐다.
입출금 중단에 사무실까지 폐쇄하자 ‘러그 풀’(먹튀)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며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특히 하루는 국내 업체지만 국내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해외 법인으로 설립했고 홈페이지에도 한국어가 없다. 하루 투자자가 법적 조치를 취하거나 돈을 돌려받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진 이유였다.
하루가 말한 문제가 생긴 협력사는 B&S홀딩스다. 하루 고객 자산 상당액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B&S홀딩스는 가상자산을 퀀트 매매로 운용해 수익을 내는 곳이다. 하루는 B&S홀딩스가 손실이 나거나 운용 자금이 청산된 상태에서도 지속해서 수익을 내는 것처럼 위조한 허위 경영보고서를 제공해 이용자를 속였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다만 투자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하루가 맡긴 고객 자금이 어느 정도 손실을 봤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루는 ‘투자자 자산의 손실 여부와 범위를 조사 중’이라고만 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하루가 맡은 고객 자금을 전액 손실 봤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최근에도 한 운용사가 퀀트 트레이딩을 하다 급속한 변동 때문에 고객 자금을 거의 100% 날린 경우도 있다”면서 “가상자산은 가격 변동 폭이 크고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퀀트로도 대응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 뒤인 14일 델리오도 하루의 가상자산 입출금 중단 여파에 따른 시장 변동성 급격한 증가 및 투자자 혼란 가중을 이유로 일시적으로 출금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입출금 중단 사태 직후 델리오는 하루 사태와 무관하다고 했지만 결국 ‘하루에 예치한 자산이 있다’고 밝혔다. 결국 델리오는 하루에, 하루는 B&S홀딩스에 돈을 맡겼다가 B&S홀딩스 문제가 터지면서 연쇄 코인런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델리오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손실액을 밝히지 않고 있다.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국내 가상자산 운용사 몇 곳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때 투자를 위해서 가상자산 운용사를 만나고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이들 비즈니스 모델이 그럴듯하게 꾸며서 투자 받은 뒤 이를 과거 테라-루나 사태 때 앵커 프로토콜에 넣거나 하루 등 유명 가상자산 운용사에 다시 맡기고 그 이익을 나눠 먹는 형태가 전부인 곳도 꽤 있었다”면서 “그랬던 업체들이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면서 몇 곳이 망했는데, 이번에 하루가 터지면서 또 몇 곳 문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17일 정상호 델리오 대표는 직접 투자자들을 만나 “하루로부터 손실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제3자 대상 유상증자나 회사 매각을 통해서라도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다소 뜬금없게도 지난해 11월 파산한 세계 2위 가상자산 거래소였던 FTX가 소환됐다. 정 대표는 B&S홀딩스가 2000억 원에서 3600억 원에 달하는 FTX 채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연락이 되지 않는 하루 대신 B&S홀딩스와 접촉 중이며, B&S홀딩스가 이 채권을 미국에서 매각해 7~8월까지 손실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다만 파산한 FTX 채권이 얼마나 유의미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파산한 FTX 채권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지 환수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 확정된 게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변창호 코인사관학교 운영자는 “지금까지 델리오 대표의 말에 따르면 B&S에 직접 맡긴 게 없는데, B&S를 운운하면서 고객들에게 희망 고문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델리오는 이미 하루에 투자한 걸 숨겼다가 밝혀진 적이 있다. 델리오가 B&S 사정에 정통한 것을 보면, 하루뿐만 아니라 직접 B&S에 투자한 걸 숨기고 있을 확률도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번 국내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만들고 규제가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변창호 씨는 “하루는 사건이 발생하자 회사 문을 닫고 잠적했다. 코인 업계 모럴해저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라면서 “카이스트 출신이 대부분이라는 엘리트 집단도 코인 업계로 오면 문제아로 전락하는 게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코인 관련 규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대로 방치하면 계속 반복될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하루와 델리오는 투자자로부터 사기로 피소됐다. 6월 16일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는 “투자자들을 대리해 하루와 델리오 경영진을 사기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LKB는 “하루와 델리오는 고객의 가상자산을 예치 받아 무위험으로 자산을 불려준다고 기망했고, 위험한 운용 방법을 숨겼으며 고객이 승낙할 가능성이 없는 위험만 선물, 옵션거래를 위탁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