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4조 원 민간 유치로 산업단지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공급한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는 추세다. EU(유럽연합)는 지난 4월 18일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과시켰다. 탄소국경제도는 유럽연합 역외 기업들이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시멘트, 수소제품 등 6개 품목을 유럽연합으로 수출하는 경우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추정해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이다.
글로벌 기업들 역시 ESG 경영(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을 확대하고 있다.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에서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졌다. RE100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신환경 경영전략을 제시하며 RE100 가입을 선언했고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지속해서 늘려가고 있다. 7월 4일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31%를 기록했다.
현실적으로 RE100은 고민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최대한 빠르게 재생에너지 기반을 조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다. 글로벌 시장은 우리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기존 방식을 고집하다가는 밥그릇을 지키기 어려워질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5월 RE100대신 CF100을 들고 나왔다. CF100은 ‘무탄소 에너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을 말한다. 쉽게 말해 RE100에 원자력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정부는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에 제약이 있다며 CF100이 적합하다는 입장이지만 관건은 글로벌 대기업들이다. 이미 RE100을 추진 중인 기업들이 굳이 CF100으로 넘어갈지는 미지수다.
경기도의 판단은 정부와 달랐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재생에너지 활용 여부가 각종 통상압력으로 작용할 것을 예측하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그리고 7월 17일 도내 기업의 RE100 달성을 지원하는 ‘산업단지 RE100’ 사업을 선보였다.
‘산업단지 RE100 사업’은 산업단지 내 공장 지붕이나 유휴부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거기서 나오는 재생에너지를 단지 내 공장은 물론 외부 기업에도 공급하는 사업이다. 산업단지는 환경·민원·계통연계 등의 이슈에서 자유롭고, 도내 193개 산단 유휴부지 내 재생에너지 잠재량이 7.6GW에 이를 정도로 높아 RE100 달성에 효과적이며, 산단 입주기업의 탄소 규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 사업에는 8개 민간투자 컨소시엄이 참여하게 되는데 4조 원 규모를 투자해 2026년까지 경기도 내 50개 산단에 태양광 2.8GW(원전 2기 생산 전력량)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2.8GW는 원자력발전소 2기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도는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을 실천하기 위해 협력업체에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요구하면서 국내 수출기업들에게 무역장벽이 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산업단지 RE100’을 적극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하향한 가운데 이뤄진 이번 협약은 경기도가 대한민국 RE100을 선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경기도는 이번 협약으로 RE100 대응에 고심했던 도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확보가 쉬워져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도록 지붕을 빌려주는 기업 역시 임대 수익을 얻거나 지분투자 등을 할 수 있어 다른 산업단지들의 추가 참여도 예상된다.
50개 산단에 예정된 2.8GW의 태양광 시설 설치가 완료되면 지붕이나 유휴부지를 임대 해준 산업단지 내 기업들은 연간 총 1천억 원의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연 지사는 17일 협약식에서 “이번 협약은 일석삼조의 의미가 있다”라면서 “첫 번째는 2.8GW에 해당하는 신재생에너지를 우리가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를 도의 재정 지원 없이 협약에 참가한 기업들의 투자로 한다는 것, 세 번째는 장소를 제공한 산단 내 기업들이 연간 1천억 원의 임대료 수익을 올리게 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도는 우선 올해 착수 가능한 산단 50개소를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이를 도내 193개 산단 전체로 확대할 방침이다. 50개 산단을 4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 선정된 2개 컨소시엄이 해당 지역에서 산단 RE100을 추진한다.
경기도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8개 컨소시엄과 ‘경기 산단 RE100 추진단’을 구성해 민관협력 체계를 구축해 지원한다. 8월부터 찾아가는 산업단지 간담회도 실시하고, 재생에너지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RE100 이행이 시급한 경기도 기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