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줄고 선복량 늘어나는 등 해운 업황 밝지 않아…현대차 “HMM 인수 검토한 바 없어” 손사래
#결합에는 문제없는데…
HMM이 매각 절차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은 이르면 7월 중 매각과 관련된 공고를 낼 방침이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갖고 있는 구주와 보통주 전환이 가능한 영구채를 함께 매각해 경영권을 확실히 넘기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현재 매각 대상 구주의 시가가 4조 원에 육박하고 남아있는 영구채 액면가는 2조 6800억 원에 달해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하면 몸값은 8조~9조 원이 될 전망이다. 인수 후보로 유동성이 풍부한 현대차그룹이 꼽히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이 HMM을 인수해 현대글로비스 산하에 편입할 경우 현대글로비스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단순히 매출액 기준으로만 따져도 CJ대한통운을 제치고 국내 1위의 종합 물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고려하면 물류장악이 하나의 패권이 되어가고 있는 데다 제조와 물류는 어떤 상황에서든 시너지가 나기에 충분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또한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75% 수준으로 세계 2위고 그중 해상운송이 전체 수출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가 HMM을 인수한다면 외형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수출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중관계 개선이 기대되면서 올해 하반기 해운 업황 역시 상반기에 비교해 개선되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해 초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디리스킹’(탈위험)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비롯해 미국 정부도 대중무역과 관련해 ‘디리스킹’ 기조를 공식화하고 있다. ‘디리스킹’이란 중국을 완전히 교역에서 배제하는 ‘디커플링’(탈동조)보다 완화된 개념으로 중국과 첨단 산업이 아닌 일반 산업 분야에서 교역을 넓혀 나가겠다는 기조로 해석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하반기에는 미중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관리되어 가는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미국도 내년에 선거가 있다 보니까 경기를 위축시키는 것보다 활성화하는 쪽으로 움직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가 HMM을 인수할 경우 해외의 기업 결합 승인 심사는 큰 문제가 안 될 전망이다. HMM은 글로벌 8위 선사로 7월 20일 기준 선복량 점유율이 2.9% 수준이다. 점유율이 19%인 MSC나 15.2% 수준인 머스크에 비교해 격차가 크고 독점이 우려될 만큼 특정 노선을 장악한 상태도 아니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다국적 선사인 만큼 해외에서 기업 결합 심사를 거치겠지만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판매사고 현대글로비스는 완성차와 벌크 운송에 특화된 기업인 까닭에 경쟁을 저해할 만한 결합이라 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만약 인수할 경우 기업결합은 무리 없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운업황 안갯속…현대차 손사래치는 까닭
장기적으로 해운업황의 개선세를 점치기 어렵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겸임교수는 “해운업은 유독 침체와 호황을 반복하는 업종으로 꼽힌다. 팬데믹 이전에 10년간 불황기였기 때문에 한진해운이 망하고 대한해운과 팬오션도 망해서 인수됐다”며 “HMM의 지난 실적이 좋아 기업가치가 높아 보이지만 일시적이다. 현대차가 잘못 인수했다가는 골치 아픈 사업 부문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8조 원가량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세계 10위 컨테이너 선사 짐라인도 7월 17일 올해 영업손실 폭이 6000억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지난 5월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최대 6000억 원의 흑자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으나 두 달 새 시황이 악화한 데다 물동량 침체가 이어진 까닭이다. 세계 11위 선사인 완하이라인 역시 1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HMM의 전망 역시 밝지만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교훈 교수는 “이게 신호탄이다. 해운업 침체기에 짐라인이 망하기 직전에 팬데믹이 터져서 살아남았지만 이제 다시 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 감소로 운임은 떨어지는데 글로벌 선복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2740만 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에서 700만 TEU가량이 추가로 투입될 예정이다. 치킨게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HMM의 경영 행태를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HMM은 지난해 6월 컨테이너선 2척을 2024년 12월부터 14년간 장기 용선하며 총 4억 880만 달러의 용선료를 지급하기로 계약해 물의를 빚었다. 통산 용선 기간은 3~5년 남짓인데 지나치게 오랜 기간 선박을 대여하는 데다 해운 호황 시점을 기준으로 용선료를 책정한 까닭이다. 인수자 입장에서는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해운업을 둘러싼 대외 환경 역시 기로에 서 있다. 전 세계에서 해운사들의 운임 담합과 반독점 면책 특권을 둘러싸고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사의 해상 운임 인상을 미국 인플레이션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한 미국 정부는 지난해 해운법(OSRA 2022)을 개정해 외항해운사의 운임 인상을 제한했다. 미국 의회도 해운동맹의 운임 담합을 막기 위한 해운경쟁집행법(OSCEA)의 입법절차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이 컨테이너 정기선사에 부여하고 있는 독점 금지법 일괄적용면제 정책도 내년 4월 만료를 앞두고 있다. 거기다 국제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고가의 친환경 선박을 도입해야 하는 압박까지 강도를 높이고 있어 해운사들에게 불리한 국면이 이어지리라는 분석이다.
대외 환경을 떠나서 현대글로비스가 HMM을 인수해 지분 가치가 높아지면 지배구조를 개편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반박도 만만치 않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현대 글로비스 지분을 판 자금으로 계열사들이 갖고 있는 모비스 지분을 사들여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모비스 지분을 늘리겠다는 건데 지금 시가총액 차이가 3배 가까이 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라며 “HMM을 인수한다고 해서 주가가 그렇게 많이 오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대차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따로 HMM 인수와 관하여 검토하는 바가 없다. 드릴 수 있는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