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은 혼합단지 관리 실태 ③이게 약자와의 동행인가요
관리비를 줄이겠다며 경비원 일자리를 없앤 이 아파트는 그 결정이 있기 한 달 전, 관리사무소 직원의 급여를 5.06%나 인상했다. 관리직원 급여를 올릴 여력은 있었지만 경비원의 일자리를 지킬 의지는 부족했던 셈이다. 이 아파트를 공동관리하는 임대사업자 서울주택도시공사 강서센터는 이 결정에 반대할 권한이 있었지만 아무 문제없다는 듯 관리직원 급여 인상, 경비원 감축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혼합단지 A 아파트에는 재계약 전까지 12명의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경비원들은 경비업무 외에도 재활용 분리수거 업무도 맡고 있는데 대단지인 이 아파트에는 재활용 분리수거장만 15개가 있어 격일제로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평균 2개 이상의 분리수거장을 담당하며 분리수거 업무를 수행한다.
대형 톤백 마대에 가득 찬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경비원들이 가장 힘든 업무로 ‘재활용품 분류’를 꼽는 것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허리를 굽혀야 하는 고된 업무 강도 때문이다.
경비원들은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이나 무더위에도 주민들이 내놓은 재활용품을 일일이 손봐야 한다. 스티로폼 박스를 노끈으로 묶고, 잘못 분류된 쓰레기들을 다시 분류하고, 수거업체가 가져가기 쉽도록 종이류를 접어 쌓아 두는 것도 경비원의 일이다. 가끔 깨진 유리병에 손을 다치기도 하지만 경비원들은 묵묵히 일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통 관리도 경비원의 몫이다. 주민들이 버린 이물질을 빼내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거 차량이 가져가기 쉬운 위치에 옮겨야 한다. 쓰레기가 가득 차 무거워진 음식물 쓰레기통을 옮기다 보면 옷에 악취가 배기도 하지만 경비원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더럽고 힘들고 건강에 치명적인 격일 24시간 근무지만 생계를 위해 경비일을 이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노년에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자리. 그래서 경비원은 '인생 마지막 직업'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올해 2월 정기회의에서 경비원 1명을 줄이는 조건으로 경비업체와 재계약을 맺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70대 중반의 경비원 B씨는 일자리를 잃고 아파트를 떠났다.
공동주택관리법 제7조에 따라 혼합단지의 공사‧용역 계약은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인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동결정해야 한다. 즉 서울주택도시공사 강서센터가 이 결정에 부당함을 느꼈다면 경비원의 일자리를 지킬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강서센터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경비원 감축 안건의 제안자가 누군지 묻자 아파트 관리소장은 7월 20일 “관리비를 어떻게 줄일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휴게시간을 늘릴지, 경비원을 줄일지 경비업체와 협의하고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통해 결정한 것이다”라고 했다.
경비원 감축 의결 한 달 전 관리직원 급여 5.06% 인상 안건의 제안자에 대해 묻자 관리소장은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하다 보니 인상 안건을 올렸다”고 했다. 관리소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이미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있지 않느냐고 되묻자 “최저임금을 받는 기사들도 있다. 기사들 올리면서 다른 직원들도 함께 올린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한 임차인은 “관리직원 급여를 올릴 수 있다. 세대 당 일반관리비 조금만 더 내면 몇몇 직원들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자기 월급은 올리면서 남의 일자리를 뺏는 선택을 했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누가 이런 식으로 관리비 줄여달라고 했나”라고 한탄했다.
공동결정을 내린 서울주택도시공사 강서센터에 1월 관리직원 급여 5.06% 인상과 2월 경비원 감축에 동의한 이유에 대해 묻자 센터 측은 “임차인 대표가 수용했다면 SH에서 수용 안 할 이유는 따로 없을 것 같다”며 임차인대표회의에 책임을 돌렸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