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폰서 ‘에어아시아’도 훨훨~
▲ 박지성이 7월 23일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의 글로라 붕 또모 스타디움에서 열린 페르세바야 수라바야와의 아시아투어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 QPR 아닌 박지성 투어?
QPR은 사실 인기 구단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인지도는 바닥에 가까웠다. QPR이 관심을 모은 건 2011~2012시즌 EPL 막바지였다. 리그 우승을 노리던 맨체스터시티(이하 맨시티)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엄청난 저력을 뽐내며 사투를 벌인 장면은 깊이 각인됐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함께 강등권에서 순위 싸움을 해왔던 볼턴 원더러스가 스스로 무너지는 바람에 극적으로 1부 리그에 생존하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빠르게 잊혀졌다. 심지어 일부 팬들에게는 이청용(24)이 소속된 볼턴을 강등시킨 원흉으로도 비쳐졌다. 하지만 금세 부각됐다. 변화는 한순간이었다. 간혹 외신 보도들을 통해 “한국 선수 영입에 관심 있다”는 루머가 나오긴 했지만 진짜 박지성이 영입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박지성이 2년 계약을 맺고, 등번호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비밀스러운 행보로 계약 순간까지 떠들썩하더니 매년 여름 EPL 클럽들의 연례 행사였던 프리시즌에도 떠들썩했다. QPR은 7월 17일부터 23일까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쿠알라룸푸르, 인도네시아 수라바야를 돌며 아시아 투어를 진행했다.
프리시즌 투어 경기 상대들은 사바주 올스타팀, 말레이시아 프로리그 디펜딩 챔피언 켈란탄FC(이상 말레이시아), 페르세바야 수라바야(인도네시아) 등 다소 익숙지 않은 팀들이었지만 QPR 구단 창단 이후 처음 갖는 아시아 투어였기 때문에 충분히 많은 의미를 부여할 만 했다. 구단주이자 메인스폰서 말레이시아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의 전폭 지원과 지지가 컸지만 박지성이 있었기에 더욱 가치가 빛났다. 모든 것이 ‘박지성의’ ‘박지성을 위한’ ‘박지성에 의한’ 것처럼 비쳐졌다.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 만났던 페르난데스 회장은 “모두가 (박지성의 영입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탈리아 에이전트조차 ‘말도 안 된다’고 했다. 한데, 난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 맨유를 설득하는 일이 어려웠지만 성사됐다. 런던으로 오기 전, 박지성이 우리와의 계약서에 서명하는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줬다. 정말 동화와 같은 상황이었다”며 가치를 부여했다.
박지성이 다녀간 모든 지역에서 열광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현지 기자들이 계속 따라다녔고, 심지어 태국 TV에서는 여성 리포터가 속한 연예 취재진이 파견됐다. 현지 매체들은 끊임없이 박지성 소식을 담은 스페셜 리포트를 메인 뉴스로 다뤘고, 현지 팬들 또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적어도 동남아시아에서는 QPR이 주인공이 아닌, 박지성이 주인공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박지성이 직접 공들이는 사업인 태국 자선경기의 영향도 있었다. 굵직굵직한 대어급 선수들과 ‘한류 바람’을 일으키는 인기 연예인들이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무대였기에 박지성의 이름값은 더욱 높아진 상황. 그렇다고 구단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간접 홍보 효과는 대단했다. QPR의 네임밸류도 조금씩 높아지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말레이시아를 기반으로 한 에어아시아의 가치 또한 크게 폭등했다. 엄밀히 말해 축구를 통한 마케팅이 프리시즌의 주목적이기 때문에 QPR의 사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 팀 적응도 OK
하지만 박지성과 QPR의 아시아 투어가 비단 마케팅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박지성의 비공식 QPR 데뷔 무대였다. 특히 캡틴 완장을 차면서 그라운드에서의 존재감 역시 무시하기 어려웠다.
맨유에서 박지성은 ‘원 오브 뎀(One of Them·다수 중 하나)’ 이상이 되기 어려웠다. 워낙 세계적으로 쟁쟁한 멤버들이 즐비하기에 박지성은 대개 조연에 머물렀다. 그러나 QPR에서 박지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선수단 이름값부터 맨유와 큰 격차가 있다. 조연보다는 리더 역할을 맡아야 했다. 여기에는 큰 무대를 밟아본 경험과 관록이 중시됐다는 분석이다.
QPR 사령탑 마크 휴즈 감독도 이를 기대하고 있었다. “주장을 완전히 확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한국 대표팀 주장으로 동료들을 이끌며 월드컵과 아시안컵 등 많은 경험을 했다. 그를 믿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새 팀에서의 포지션 역시 내내 화두였다. 미드필드 지역이라면 어디에서나 활용이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의 전형이 바로 박지성이다. 좌우 측면은 물론, 중앙 한복판에서도 제 몫을 100% 해낼 수 있다. 1차 저지선 역할부터 제2선 공격수 역할까지 두루두루 소화한다. 여기서도 ‘박지성 시프트’가 있었다. 아시아 투어에서도 QPR 벤치는 이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앞으로 2012~2013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 여러 가지 실험을 하겠다. 특정 선수를 빼고 투입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가장 부족한 포지션,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는 위치에 박지성을 넣겠다.”(휴즈 감독)
지난 시즌 맨유에서 박지성이 가장 서운함을 느낀 부분은 출전 시간의 부족이었다. 퍼거슨 감독이 강력히 잔류를 희망했음에도 불구, 약한 팀으로 이적한 것은 ‘용의 꼬리’가 아닌 ‘뱀의 머리’가 되기 위함이었다. 박지성에게 QPR은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법. 맨유는 항상 우승권이었다. 그런데 QPR은 우승을 바라볼 수 없는 전력이다. 어쩌면 2부 리그 강등이라는 최악의 사태도 감수해야 한다. 영광 대신 생존을 택한 박지성은 아시아 투어를 통해 소속 팀 이미지 제고와 시장 개척 가능성, 출전 시간 보장이라는 다양한 소득을 올렸다.
쿠알라룸푸르=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