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이 400미터 자유형에서 금메달보다 더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다면 한국 유도의 조준호가 어이없는 판정 번복의 불운을 딛고 획득한 동메달도 금메달 못지않은 동메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9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엑셀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유도 남자 66kg 이하급 동메달 결정전에 출전한 조준호는 어제 하루 동안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기분이었을 겁니다. 8강전에서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에게 심판 판정으로 이겼다가 국제유도연맹 심판위원장의 개입으로 다시 번복되는 황당한 상황에서도 패자부활전을 거쳐 동메달 결정전에까지 진출, 결국엔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으니까요.
조준호의 판정 번복 사건은 유도 관계자들한테도 황당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는데요, 그래도 유도대표팀을 이끄는 정훈 감독과 조준호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경기를 잘 풀어간 덕분에 ‘아름다운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유도대표팀은 7월 초에 일본 유도 명문대학 천리대에서 마지막 전지훈련을 가졌습니다. 당시 대표팀을 취재하기 위해 천리대를 방문한 기자는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네 차례씩 계속되는 빡빡한 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선수들 중 조준호의 악착 같은 훈련 모습에 자연스레 눈길이 쏠렸습니다. 선배 최민호와 막판 경합 끝에 낙점을 받은 터라 조준호는 대련 훈련뿐만 아니라 새벽 트랙 훈련에서도 제일 열심히 뛰고 달리며 지옥 훈련을 소화해냈습니다.
정훈 감독도 미디어에서 금메달 후보로 꼽는 왕기춘, 김재범도 주목할 만하지만 조준호 또한 지켜봐달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조준호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였던 거죠.
경기 후 쏟아지는 조준호 관련 기사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이 조모상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부음 소식을 알지 못하고 경기에 임했던 그가 나중에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에 절로 숙연해지는 마음 감출 수가 없네요.
조준호의 동메달은 오늘부터 이어지는 왕기춘, 그리고 김재범 등 다른 선수들한테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참고 견디고 이겨내면 그에 상응하는 값진 열매가 주어질 것이라는 ‘진실’을 말이죠.
올림픽 취재를 와서 느낀 점은 한국 미디어의 최대 관심 선수는 박태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가 갖는 영향력이나 드라마틱한 스토리, 그리고 상품성 등을 고려해봤을 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245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이번 올림픽에서, ‘저를 포함해’ 미디어의 관심이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이 무대를 위해 지난 4년간 절치부심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 수많은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메달리스트들한테만 폭풍같은 관심을 쏟아내는 변함없는 자세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저를 포함해서’ 쉽게 바뀔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메달권에 등극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제 올림픽은 시작입니다. 그리고 경기는 많이 남았습니다. 올림픽 취재를 나온 기자들 사이에선 초반 기대를 모았던 금메달리스트 후보들의 낙마로 인해 한국이 내세운 ‘10-10’ 목표가 과연 이뤄질 수 있느냐, 없느냐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래도 선수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병역 문제로 마음 고생을 톡톡히 했던 박주영이 스위스전으로 인해 자신을 향한 부정적이었던 시선을 조금은 덜어나갈 수 있었듯이 런던올림픽은 245명의 한국 선수들에게 메달 획득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이 안고 있었던 ‘숙제’들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의 시간들이었음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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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