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귀는 늘 한산하다. 덩치 큰 나무, 수종에 상관없이 한 그루쯤은 서 있어야 제격이겠지. 땅의 흐름을 쫓아 길은 두세 갈래로 논밭을 질러서 마을로 이어질 게고. 그 중간 참에는 이정표처럼, 혹은 전봇대처럼 미루나무 같은 것이 한두 그루는 있어야 한다. 싸리울이나 돌담을 두른 집들은 산을 배경 삼아 앉아 있고. 지붕 한 귀퉁이엔 상식적 형태의 새 서너 마리쯤 앉아 있을 게다. 그러면 귀가하는 심정 품은 새 한 마리 길 따라 날아든다.
그리고 아스라이 보이는 샛강 아니면 멀리 있는 바다, 그 너머 언덕이나 야트막한 동산을 의지해 해가, 아니면 달이 걸려 있고. 문득 추억의 향기 흩뿌리듯 바람 한 자락 들판을 건너간다.
마음속에 담은 고향 모습이다. 심상에 남아 있는 우리들 고향을 잡음 섞인 LP판처럼 그려내는 작가가 손영선이다. 어눌해 보이는 형태와 시래기 된장국 같은 색감, 이런 것이 그의 작품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구구한 설명 없이 단박에 가슴에 와 닿는 그림. 손영선 그림의 장점이다.
이런 그림을 요즘 정서에 맞춰 보면 흘러간 유행가 같다. 공영 방송이기 때문에 구색 맞춰 편성한 ‘가요무대’를 보는 느낌이다. 캔버스에 유채만으로 그렸고, 꼼꼼하게 살펴볼 만한 특별한 기법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왜 그럴까.
마음 깊숙이 박혀 있는 우리네 정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심금을 울린다는 것이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처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근본적인 정서, 고향의 일반적인 모습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책갈피에 숨겼던 마른 꽃잎을 꺼내듯,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솜씨가 너무나 소박하기에 더욱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손영선이 그리는 풍경은 절경이 아니다. 너무나 평범한 보통 풍경이다. 이런 풍경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의 심지 곧은 역량 덕분이다. 회화의 본령을 지켜온 힘에서 나온다.
우선 구성의 힘이 보인다. 단순함으로도 빈약해 보이지 않는 화면을 연출하는 것이 손영선 회화의 매력이다. 오랜 공력의 결실이다. 50여 년 이상 오직 그림만 바라보고 달려온 우직함 때문이다. 그것도 시류에 눈 돌리지 않고, 장인의 자세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와 함께 색감이 보여주는 무게 역시 예사롭지 않다. 무거운 색감을 쓰지 않았고, 화려한 색채나 과격한 대비 효과에 의지하지 않고도 색감의 무게를 보여줄 수 있는 것 또한 작가의 성실한 시행착오의 결정체다. 중간 톤 서너 가지 색감만으로 깊이를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때릴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한 볼거리에서 심금을 울리는 정서를 뽑아내는 손영선 회화는 ‘그림은 이래야 제격이다’라는 오래된 깨달음을 되새기게 만든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