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악성 민원도 교권 침해 원인…당정 학생인권조례 개정 추진 두곤 이견
지난달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제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교사에게 욕설을 하고 얼굴과 몸을 구타했다. 해당 교사는 전치 3주의 상해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고 학교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18일에는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숨진 교사는 평소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교직 생활을 얼마 하지 않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위에 대해 전국 교사들이 진상규명 촉구에 나서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달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벌어지는 등 교권 추락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들어 교권 침해와 관련된 사건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교육계 관계자들은 교권 침해는 오랫동안 곪아온 문제라고 말했다. 황유진 교사노동조합연맹 정책처장은 “교육계에서 교권 침해는 곪다 못해 터져버릴 만큼 오래된 문제이고, 십수년 전부터 점점 가속화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심의 건수 기준 최근 6년간(2017~2022년) 교원 상해‧폭행은 1249건에 달했다. 이 중 학생의 교사 폭행 건은 2018년 165건에서 2022년 347건으로 4년 만에 2.1배 증가했다. 이에 대해 교총은 “교보위에 오르는 건수는 교권 침해 사례의 극히 일부이며 교원에 대한 상해와 폭행은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교권 추락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다. 경기교사노조가 지난 3월 전국 시도교육청에 요구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돼 수사를 받은 사례는 1252건이었다. 이 중 경찰이 종결하거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례는 676건(53.9%)로 절반이 넘는다. 전체 아동학대 수사 사례 중 경찰 종결 및 불기소 처분된 사례가 14.9%인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았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원들의 교육 활동과 정상적인 생활 지도조차 의심이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무분별하게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게 된 부분이 교권 침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에게 ‘교실 뒤에 가서 서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나 이 밖에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생활지도 방식들이 지금은 다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실제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어떤 방해 행위를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 이외에는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충남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수업시간에 교단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하는 영상이 SNS로 퍼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상에서 이 학생은 교사가 수업 중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단에 누워 휴대폰으로 교사를 촬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교총은 “영상에서처럼 학생이 수업 중에 문제행동을 해도 교사가 이를 제지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생활지도권 붕괴 현실을 지적했다.
2015년 아동학대 범위에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가 추가된 뒤 생활지도를 위한 교사의 훈계 등을 아동학대로 몰아가 제대로 된 지도를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A 씨는 “수업시간에 지속적으로 떠들어서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잠깐 뒤에 세워 놓는 것도 아동학대고, 교실에서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것도 다른 애들 앞에서 혼내는 거라고 정서적 학대라고 한다”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0조는 ‘누구든지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의심만으로도 아동학대 신고가 가능해 학생‧학부모가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9월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을 당시 응답자의 92.9%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금지법이 통과되고, 그게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까지 예외 없이 적용되면서 교원들이 정당한 교육활동을 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며 “일정한 예외사항들을 인정해주거나 교사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등 아동학대 금지법이 남용되는 사례는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선 교사 A 씨는 “선생님들끼리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교직생활을 한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며 “훈육을 위해 하는 말이나 생활지도를 잘 받아들이는 아이와 학부모를 운 좋게 만나서 지금까지 신고를 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더라”고 말했다. A 씨는 “요즘은 생활지도를 하기 위해 했던 말 하나 행동 하나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니까 차라리 젊었을 때 신고당해서 빨리 다른 살 길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학부모의 자녀 과잉보호도 교권 침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요즘에는 자녀가 아예 없거나 한 명인 경우가 많아서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지나친 사례가 많은 것 같다”며 “교권 추락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겠지만 일부 부모들이 자녀의 일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이다 보니 그것이 고소나 고발로 이어져 교권 침해 문제가 심각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이 지난 21일부터 전국 초등교사를 대상으로 교권 침해 실태를 설문 조사한 결과, 총 응답자 2390명 중 2370명(99.2%)이 교권 침해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교권 침해 유형으로 ‘학부모의 악성 민원(49%)’이 가장 많았다.
일각에서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이 추락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과 가치, 자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각 교육청의 조례를 말한다. 2010년 경기도 교육청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현재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등 모두 6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당정은 “권리만 규정돼 있고 책임과 의무는 빠져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교권 추락의 근본적 원인이 학생인권조례에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이 있고, 없는 지역도 있는데 이 조례가 없는 지역이라고 해서 교권 침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며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추락과 연결 짓는 것은 원인 진단이 잘못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교사노동조합 등 교사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침해되는 요인과 양상은 다양하다”며 “원인을 어느 하나로 과도하게 단순화해서 돌려선 안 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학부모 민원 제기 시 교사 보호대책이 보완돼야 하고, 특수교육 대상 범위를 확대해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을 따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기존 교원 보호 관련 법에 대해서는 교직단체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추가 조치나 구체적인 메뉴얼은 뭐가 되어야 할지 살펴보고 법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아동학대 신고 남용 사례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고, 교권보호위원회도 의무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면서도 “모든 문제를 법률로만 해결할 수 없다. 학부모회와 교사회가 함께 만나 연석회의 방식을 통해 소통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