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은 혼합단지 관리실태 ④임차인들 “사실상 한통속” 반발, 임차대표 “주민의견청취 방식도 법 위반”주장
서울주택도시공사 강서센터는 지난 3월 A아파트의 주택관리업자 재계약과 관련한 임대세대 의견수렴(우편)을 실시했다. 응답률이 8.8%로 저조하자 강서센터는 재차 의견수렴을 실시한다. 2차 의견수렴결과 기존 업체와의 연장을 바란다는 응답은 199건, 공개경쟁입찰을 원한다는 응답은 135건이 나왔다.
2차 의견수렴도 과반 참여에 미달하자 강서센터는 3차 의견수렴(문자메시지)을 받았다. 그 결과 경쟁입찰은 181건(40%), 연장은 253건(55.8%)이 나왔다. 그러자 강서센터는 임차인 과반수가 재계약에 동의했다는 근거 등을 들어 기존 관리업체와 수의계약으로 재계약을 맺는다.
임차인대표회의는 이 같은 강서센터의 결정이 법률 위반이라고 보고 있다. 이 아파트 임차인대표회의는 3월 정기회의에서 동대표 전원이 기존 업체와의 재계약을 반대했다. 임차인대표회의는 "공개경쟁입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서울주택도시공사에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임차인대표회의는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제52조에 따라 강서센터에 임차인대표회의와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서센터는 “주택관리업자 선정은 임차인대표회의와 협의해야 할 사항이 아니”라며 임차인대표회의와 협의하지 않았다.
앞서 이 아파트에서 일어난 '관리비 절감을 위해 경비원을 해고하는 결정'까지 “임차인대표회의의 결정이라면 어쩔수 없다”던 강서센터가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전원 재계약 반대를 의결한 임차인대표회의의 결정을 묵살한 것이다.
임차인대표회의는 또 다른 문제도 제기했다. 주민투표 실시를 위해선 투표목적, 투표방법, 투표일시, 투표 결과를 공표해야 하지만 이 같은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차인대표회의는 먼저 주민 의견 청취 공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편물로 주민 의견 청취 시 주민이 직접 의견을 제시할 권한이 있는 주민인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작성해야만 법률적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강서센터는 1차 의견 수렴 시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기재란을 공란으로 발송했고 2차에는 주소, 성명 등이 기재된 문서를 발송해 ‘제3자가 의견을 표시해도 무방하도록’ 했다고 임차인대표회의는 항의했다. 실제로 2차 설문처럼 주소, 성명이 기재된 설문지는 의도를 가진다면 악용하기 너무나도 쉬운 구조임이 분명하다.
3차 의견 수렴에선 휴대전화로 문자를 발송했는데 이를 두고 임차대표들은 임차인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아니었으며 의견 미제시 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위압감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차상 하자가 있는 의견수렴이었다는 의미다.
이에 강서센터는 “의견 청취의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관련 법령이나 규정이 미비해 해당 과정에 대한 오류를 판단하기 어려우나 공사는 임차인들의 참여를 최대한 독려해 고객만족도 및 의견을 청취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주소, 이름을 기재해 보낸 의견 청취 방식의 허점 외에 또 다른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강서센터가 보낸 의견수렴 문서에는 기존 관리업체를 배제하기를 원한다는 문항은 없었다. 기존 업체와 연장 계약, 경쟁 입찰 둘 뿐이었다.
이 아파트에는 임대세대에 대한 차별 대우로 기존 업체와 계약을 반대하는 임차인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강서센터는 ‘기존 업자 배제’ 문항은 넣지 않았다.
선택지가 수의계약 재계약 ‘찬성’과 ‘반대’ 밖에 없으면 결과가 어떻게 됐든 기존 업체는 불리할 게 없다. 수의계약을 못 하면 다시 입찰에 참여하면 된다. 만약 기존 업체에 유리한 ‘연장 계약’ 문항을 넣었다면 반대급부로 기존 업체를 제외하는 ‘입찰 배제’ 문항도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강서센터의 설문지에는 이 같은 문항은 없었다. 강서센터 관리운영팀장에게 해당 설문 양식이 서울주택도시공사 공식 서식인지 묻자, 팀장은 “강서센터 내부적으로 쓰고 있는 양식”이라고 했다.
기존 업체와의 계약에 반대하는 임차인이 많은데 왜 ‘기존 업체 배제’ 항목이 없었는지 묻자 팀장은 “재계약 찬성 안 하면 반대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했다. 이런 식이면 반대가 많아도 다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존 업체가 유리하지 않냐고 묻자 “아 그렇죠. 그거는”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임차인들은 관리업체의 문제를 강서센터에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임차인대표회의 역시 기존 업체와의 재계약은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그런데도 강서센터가 기존 업체와 수의계약을 강행하자 임차인들은 강서센터가 주택관리업자를 비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품고 있다.
한 임차인은 “관리사무소 가면 임대냐 분양이냐 물어보고, 민원 처리도 잘 안하는 관리사무소다. 이렇게 임차인 무시하는데도 수의계약 몰아주는 건 한통속이라는 얘기 아닌가”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강서센터 측은 “재계약을 의도적으로 맺으려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라며 “주택관리업자 관련 민원이 계속 제기되면 앞으로 경고 등 페널티를 주고 다음번 입찰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