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돌던 ‘검은 돈’ 실체가 서서히…
▲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둘러싸고 각종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완공된 경기도 여주군 남한강 이포보의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
<일요신문>은 지난해 1월 초 이명박 대통령의 손윗동서인 황 아무개 씨의 막냇동생이 2010년 4대강 사업 하도급을 미끼로 건설업체로부터 26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을 처음 보도(947호)했다. 검찰은 황 씨를 불구속 기소했고, 지난해 8월 30일 대구지법 안동지원(형사1단독)은 황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지난해 3월에는 이 대통령의 사촌형인 이 아무개 씨가 4대강 사업 투자비 명목으로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잡음과 논란은 4대강 사업 입찰 과정에서부터 불거졌다. 지난 2009년 9월 4대강 사업 1차 턴키 사업공모 결과 가장 많은 사업비가 투입된 낙동강 10개 공구 가운데 8개 공구를 포항 동지상고(현 동지고) 출신들이 포진한 건설사가 대거 낙찰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동지상고는 이 대통령과 그의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모교라는 점에서 정권 차원의 ‘밀어주기’ 내지는 특혜 의혹이 증폭됐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는 22조 원이 투입된 대규모 국책사업인 만큼 대기업들의 담합 의혹 및 그 과정에서 전 방위적인 정관계 로비가 진행됐을 것이란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야권 등이 제기한 이러한 의혹들은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5일 공정위가 4대강 사업 입찰과 관련해 현대건설 등 19개 건설업체의 담합 사실을 확인하고 8개 건설사에 1100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내사를 진행해 온 검찰도 사정 칼날을 꺼내 들었다. 지난 6월 4일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지난 4년 동안 4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로 대우건설 상무 지 아무개 씨와 하청업체 대표 백 아무개 씨,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공무원 등 모두 11명을 구속했다. 특히 검찰은 비자금 중 일부가 정관계 로비에 사용된 혐의를 잡고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동시에 수억 원의 상납내역이 적힌 장부도 압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각종 비리 의혹 건에 대해 첫 성과물을 건진 검찰은 은밀히 수사를 확대했다. 지난 6월에 사법처리한 건설업체 인사나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곁가지’에 불과하고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건이 ‘권력형 게이트’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 만큼 본 사건의 정점에는 분명 정관계 거물급을 포함한 ‘몸통’이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실제로 4대강 가운데 낙동강 공사 구간의 경우 이 대통령 형제의 모교인 동지상고 출신들이 대표로 있는 중소업체 7곳이 대기업 컨소시엄에 포함돼 공사지분을 확보하고, 공동도급 형태로 사업에 참여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대통령 친인척이나 실세 측근 등이 사업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야권 일각에서는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4대강 사업에 적극 개입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4대강 사업 입찰에서 탈락되거나 소외된 중소 건설업체들도 보복 등을 우려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왔지만 현 정권이 임기말로 접어들자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파일 및 정관계 로비 정황을 뒷받침하는 자료 등을 사정당국에 제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검찰은 이들 업체들의 제보 및 자체 내사를 통해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파일을 여러 건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검찰은 4대강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를 동원해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법 등으로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잡고 계좌추적을 통해 돈의 용처를 파악하는 등 사실 관계 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 고위직 출신인 임내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검찰이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비자금 형성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임 의원은 8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기업 관계자가 검찰에 제출한 USB에는 대기업이 14개 하청업체를 통해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법 등으로 토목 부분에서만 800억 상당의 비자금을 형성한 내역 및 뇌물 지급 정황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임 의원은 검찰이 4대강 사업과 관련된 각종 비리 파일 및 비자금 형성 내역을 확보했으면서도 이를 축소·은폐하려 한다고 폭로했다. 임 의원은 “검찰은 올 3월부터 낙동강 살리기 관련 비리 수사를 진행해 칠곡보에서 공사비 부풀리기를 통해 비자금을 형성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지급한 공사 관계자와 대기업 관계자, 뇌물을 받은 공무원 등을 지난 6월 초 구속기소했다”고 전제한 뒤 “검찰은 일부 비자금 사실을 확인한 후 추가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단서를 확보하고도 전체 비자금 조성 규모 및 사용처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은 채 현 수준에서 축소해 덮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해 또 다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이어 그는 “해당 비자금의 용처 수사에 대해 전현직 검찰 최고위층과 해당 대기업에서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는 복수 관계자의 진술이 있다”며 “검찰이 지체없이 수사에 착수하지 않을 경우 비자금의 상당 부분이 정권 실세에게 전달됐다는 의혹과 전현직 검찰 고위층의 수사 무마 시도에 대해 추가 폭로를 하겠다”고 압박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민주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은 “임내현 의원의 폭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제한 뒤 “검찰이 의지를 갖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경우 초대형 권력형 게이트 사건으로 확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4대강 사업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임 의원이 폭로한 모 대기업이 800억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다른 대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이들 대기업이 조성한 비자금을 모두 합하면 수천억은 족히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이들 대기업들이 조성한 비자금 중 상당액이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주무부서 공무원들과 정관계에 전 방위적으로 살포됐을 것이란 의혹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국정조사 및 청문회를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4대강 뇌관이 청와대는 물론 본 궤도에 진입한 대선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시한폭탄으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