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원한다면…“정치적 중간층 내게서 가능성 봐”
▲ 손학규 후보는 인터뷰 전 기자에게 여러 개의 넥타이를 내놓으며 하나를 골라 달라고 했다. 예전에 주로 매던 분홍색 넥타이를 고집하지 않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하지만 정치라는 게 어디 열심히만 해서 될 일이던가. 그가 죽자고 열심히 해서 정치입문 20년 동안 쌓아올린 지지율 결과는 1년 전부터 젊은이들 만나 좋은 말씀 하면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안철수 원장의 그것보다 한참 떨어진다. 20년 풍상을 겪으며 대권도전 하나만 바라보고 걸어온 손 후보에게 안철수 현상은 어쩌면 영원히 이해되지 않는 전인미답의 미스터리로 남을지도 모른다.
-최근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 상승세가 무섭다.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정치가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못하니까 어디 누구 없나 하며 백마 타고 온 초인을 찾는 것이다. 국민들이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불의한 사회에서 정의의 사나이가 나타나서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배트맨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가 중요하다. 실제 영화에선 그 배트맨은 정의의 사도 역할로만 해서 끝난다. 과연 안 원장이 어떤 역할로 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보듬어줄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우리 민주당으로서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 더 절실해야 한다. 민주당은 국민들이 127석을 준 제1 야당이다. 총선에서 승리를 주진 않았지만 가능성을 준 것이다. 사실 총선 전에 통합하고 나서 지지율이 10% 이상 올라가서 (국민들이) 과반을 주려고 했는데, 다 이긴 줄 알고 건방 떨고 방자해지고 자기 사람들 챙기고 패거리 정치 하니까 ‘아이고 이거 안 되겠다’ 하며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철회한 것은 아니고 ‘너 하는 것 봐서 밀어줄게’ 한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제1 야당으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보라. ‘아, 우리는 혼자 힘으로 안돼요. 공동정부 뭐 하겠습니다’ 이런 얘기나 하고 1차 후보 뽑고 나중에 단일화 하겠다고 하는 그런 정당을 왜 뽑아주느냐. 그렇게 무책임한 정당을 왜 뽑아주느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밖에 있는 사람을 쳐다볼 게 아니라 우리를 다시 쳐다보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 제주 올레길 탐방. 사진제공=손학규 |
한편 손 후보는 안철수 원장 비판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그는 앞으로 ‘손안연대’를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최대한 안철수 원장 쪽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맞춤 대권전략인 셈이다. 안 원장도 김근태 전 상임고문을 평소에도 존경했다고 말했던 만큼 ‘김근태’가 양측 연대의 다리가 될 수도 있다. ‘죽은 김근태가 산 손학규를 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그는 인터뷰 내내 안 원장에 대한 비판은 자제했지만 경험 많은 지도자의 강점을 부각시키며 안 원장과의 차별화를 강조했다.
-안 원장은 지도자로서의 검증 과정이 아예 생략돼 있기 때문에 대권주자로서 생각할 때 좀 의구심이 들지 않느냐.
▲아직 능력을 실제로 보여주지 않은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하지만 내 경우를 보면 복지부 장관 재임 때 한약분쟁이 터져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우스갯소리지만 한의사회 회장과 수차례 만나서 폭탄주를 오십잔 백잔 먹었다. 난마와 같이 얽힌 갈등을 조정하고 풀어내는 것이 그냥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법전에서 찾아낼 수 있는 법률이나 규칙이 아니란 얘기다.
-앞으로 안철수 원장같이 비정치적 인물이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게 다반사가 될 수도 있다. 정치인으로서 그것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가.
▲이미 안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자산 가치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 돼 버렸다. 이것을 굳이 버리려고 해서도 안 된다. 안 원장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자산가치를 더 크게 높이는 게 중요하다. 안철수의 매력과 손학규의 능력, 안철수의 참신성과 손학규의 안정성 이런 게 합쳐지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요즘 여의도 신동해빌딩의 손학규 후보 캠프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넘쳐 있다. 손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뒤 이어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지지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가 손 후보를 대선후보 감 1위로 밀어 올렸기 때문이다. 민평련은 친노그룹 다음 가는 당내 최대계파로 경선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비록 민평련이 특정 후보 지지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그 상징성만으로도 손 후보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손 후보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아침에 민평련 투표에서 1위를 했다는 굿 뉴스가 있었다. 기분은.
▲고맙고, 부족한 점 많은데 민평련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잘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김근태의 뜻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기대와 신뢰의 표시인 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상임고문과 함께 ‘경기고 61회 운동권 3인방’이었다. 두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 혼자 남았다. 어깨가 더 무겁겠다.
▲무겁다. 어려서부터 뜻을 같이해오고 민주주의 정의를 세우자고 하는 뜻으로 뭉쳐진 친구들이었는데 조 변호사는 벌써 타계한 지가 20년이 됐고, 김근태도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지난해 말에 갔는데… 음… 함께 꿈꿨던 이상을 꼭 이루고자 다짐을 해본다(손 후보는 민평련 투표 결과 발표가 나던 날 새벽에 친구 김근태가 잠들어 있는 모란공원 묘소에 조용히 다녀왔다고 한다).
손학규 후보는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보다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특히 한나라당 탈당 전력 등 그가 예전에는 숨기고 싶은 주홍글씨들을 이번에는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오히려 그간의 롤러코스터 같은 정치역정이 좌우와 남북을 융화시키는 거대한 용광로로 쓰임받기를 원하는 듯했다.
▲ 제주희망콘서트. 사진제공=손학규 |
-김두관 후보와의 2위 싸움에서 앞서가는 모습이다. 그를 누를 수 있는 강점은 뭐라고 보는가.
▲선거가 다가오면 국민들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과거 실적과 업적 그리고 살아온 삶의 궤적도 볼 것이다. 특히 젊어서부터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을 하면서 항상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삶의 궤적과 손학규 정신을 국민들이 인정해 줄 것이다.
-당내에는 여전히 문재인 (대선)필패론이 퍼져 있는 상태다.
▲문재인 고문이 최종후보가 되면 대선이 또 노무현 재평가 구도로 돼 국민들도 분열하게 된다. 또 하나는 PK 출신으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빈부격차와 사회적 차별이 심해지는데 중산층과 정치적 중간층 표가 어디로 가느냐. 노무현을 찍었는데 그 다음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이 오갈 데 없어진 경우가 많아졌다. 박근혜를 찍자니 ‘5·16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고, 박정희 독재를 미화하는 데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 표를 누가 잡느냐. 문재인과 노무현이?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가 되면 우리 사회는 또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래서 손학규라면 진보도 하고 개혁도 하고 복지도 해 나가면서 경제도 살리고 일자리도 만들어 봤으니까 저런 사람이라면 괜찮겠다, 이것이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구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해 분당 재보궐 선거에서 확인이 됐다. 중간층이 손학규에게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한계를 지적한다면.
▲억지로 만든 조어로 국민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여러 가지 정치적 능력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인데, 수평적 소통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생활과 어려움, 마음속을 깊이 알지 못한다. 나는 젊어서부터 어려운 국민들의 편에 서려고 했다. 대학 때 데모를 하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는데 거기에 또 무기정학을 받았다. 그때 뭘 할까 그러다가 강원도 가서 광부 노릇을 했다. 사실 학교 주변에서 책이나 보든지 아니면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미팅이나 하고 그랬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고 강원도 탄광을 찾아갔다.
-왜 그렇게 자기학대를 하느냐.
▲나는 원래 DNA가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왜 도지사를 마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민심대장정 고생을 했겠느냐. 국민들의 실생활과 어려움을 알기 위해서였다. 박근혜가 바꾼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실생활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그건 추상적인 것이고, 우리 국민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돕고자 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는 특히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지도자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글쎄, JP는 정치를 멋으로 해서 그런 표현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허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나는 한가하지 않다. 시장에 나가서 학부모 10명만 모아놓고, 청년 5명만 모아놓고 물어 보라. 생활비 대기 힘들고 교육비 비싸고 물가는 올라가고 청년들 일자리 없어서 좌절하고 하는데 어디 허업이라고 얘기할 계제가 되나.
손학규를 관통하는 일관된 철학은 국민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다. 그것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과연 손학규의 무한도전은 실업(實業)으로 끝날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딸 얼굴 보려 ‘007 작전’
손학규 후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언제나 똑같이 “큰딸이 태어났을 때”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토록 예뻐하던 큰딸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1975년부터 ‘현상금 200만 원’이 걸린 길고 긴 수배의 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큰딸은 수배받기 바로 직전인 1975년 태어나 손 후보는 딸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공중전화로 연락을 하기도 했지만 도청 때문에 약속은 못하고, 동네 근처에 가서 애들한테 쪽지를 주기도 하고 어렵게 한 번씩 만나곤 했다. 이때는 큰딸이 돌 지나 걸을 때쯤인 1976년 어느날 어린이대공원에서 몰래 만나는 장면 같다. 1977년까지 도망을 다녔는데 계속 그런 식으로 도둑만남을 가졌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런데 도망 생활을 한 지 1년여가 지나 그는 어머니가 간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몰래 병실로 찾아갔지만 어머니는 빨리 돌아가라며 차갑게 대했다고 한다. 10남매 막내였던 그는 위로 많은 형들이 있었는데 손 후보 때문에 그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봐 염려했던 어머니 걱정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용돈 3만 원을 준 뒤 병실을 빠져나왔다. 손 후보의 어머니는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손 후보는 수배상태였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찾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고 한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