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아침, 올림픽 주경기장이 위치한 런던 스트라포드역 앞에 한국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펜싱대표팀 선수들이었어요. 신아람, 정효정, 최인정, 최은숙 등 전날 여자 단체 에페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느라 빠진 상태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한 선수에게 ‘어디로 이동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커다란 트렁크 가방들이 몇 개 있었거든요. 그는 “코칭스태프가 오늘 귀국해서 배웅하러 나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선수들은 언제 귀국하느냐’라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13일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 메달리스트들은 귀국하지 말고 올림픽 끝날 때까지 남아 있으라는 대한체육회의 지시가 있었다.”
그는 또한 “일주일 동안 여기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은데 갈 수도 없고 참으로 답답하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귀국을 강제로 연기한 데 대해 선수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보도됐듯이 수영의 박태환은 체육회에서 말려도 7일 귀국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상태입니다. 체육회에선 2008베이징올림픽 때처럼 메달리스트 전원이 올림픽 이후 동시에 귀국, 개선 행사에 참석시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9일, 2박3일 일정으로 런던에 도착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대통령은 런던에서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들을 격려하고 메달리스트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등 선수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곳에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아마도 선수들이 모든 일정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귀국하지 못하는 데에는 대통령의 런던 방문도 큰 이유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소속 선수들을 현지에서 직접 지원하고 있는 한 기업체의 임원 또한 대통령의 런던 방문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 때도 예정에 없이 중국에 오신 적이 있었다”면서 “이번에도 갑자기 추진된 것으로 안다.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런던에 온 기업 회장들과의 모임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런던 방문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베이징 때는 한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가능했지만 런던까지는 힘들지 않겠느냐”면서 “우린 그런 내용과 관련해서 전혀 들은 바가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 대통령의 런던 방문과 관련해선 “아직 계획에 없다. 8일부터 김황식 국무총리가 여름 휴가를 떠나기 때문에 대통령의 런던 방문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공식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한편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메달리스트들의 귀국을 연기한 데 대해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째, 메달리스트는 올림픽 폐막식 이후 3일까지는 광고에 노출돼선 안 되는데, 행여 일찍 귀국해서 앰부시 마케팅에라도 나올 경우 메달이 박탈되는 엄청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메달리스트들이 대거 귀국하게 되면 레슬링, 태권도 등 올림픽 후반에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다. 셋째, 메달리스트가 일찍 귀국할 경우 정치인들의 홍보 수단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체육회에서 폐막식 때까지는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메달리스트들의 귀국 연기는 이 대통령 방문설과 연결돼 또 한 차례 구설에 오를 것만 같습니다.
From 런던 이영미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