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인, 그곳에선 ‘신’
“숨어있던 진정한 고수의 정체가 밝혀졌다.” 지난 2006년 대용량의 음란물 영상을 각종 공유 사이트를 통해 유포한 죄로 경찰에 붙잡혔던 일명 ‘김본좌’ 사건을 능가하는 일당이 체포됐다. 김본좌가 혼자서 음란물을 수집하고 유포했던 것과 달리 이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카페를 통해 유포된 음란물만 따져도 16만여 편(97TB:테라바이트). 이는 일상생활은커녕 잠도 자지 않고 15년을 꼬박 봐야 할 정도의 양이다. 게다가 이번에 적발된 헤비업로더 중에는 70대 노인과 대학교수까지 포함돼 있어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7일 인천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음란물 전용 카페를 개설해 조직적으로 대량의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정보통신망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파일공유사이트 대표이사와 헤비업로더 등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9년 10월부터 약 3년간 조직적으로 음란물을 유포했으며 이를 통해 1억 9000만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역대 최대 규모의 음란물 유포라는 점도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조직 구성원의 실체는 더 황당했다. 회사 대표와 직원을 제외한 12명의 헤비업로더 대부분이 현실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것. 이들은 부인과 자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대학교수나 대기업 직원으로 번듯한 직업도 가지고 있었다.
음란물 유포에 뛰어든 사연도 다양했다. 시샵(카페나 블로그 운영자)으로 활동하던 이 아무개 씨(39)는 의류사업을 하던 전직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사업 실패로 방황하던 이 씨는 평소 취미로 들락거리던 파일공유사이트 대표로부터 직접 음란물 카페 운영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일정한 양의 음란물을 올리고 클럽을 관리하는 대가로 매월 150만 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제안을 수락한 이 씨는 그때부터 헤비업로더로 변신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이 올릴 수 있는 영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9명의 ‘부시샵(카페 부운영자)’도 뽑았다. 그중에는 수백 명의 팬까지 거느린 인물도 있었다. 바로 73세의 할아버지 이 아무개 씨다. 과거 무역업에 종사했던 이 씨는 한 직능단체 임원으로 일할 만큼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직업상 일본어에 능숙했던 이 씨는 자신의 특기를 음란물 번역에 사용하기도 했다. 회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줄거리를 요약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점차 이 씨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가 음란물을 올리면 “기다렸다” “감사하다”는 댓글이 100여 개씩 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부인과 자녀에게는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지만 온라인에서는 ‘일본 음란물 전문가’였던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이 씨는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안하고 힘없는 노인일 뿐이지만 온라인에는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회원들이 동영상을 다운받을 때마다 지급되는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꿔 막걸리도 사먹고 생활비로도 쓰니 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시샵 김 아무개 씨(31)는 수년째 행정고시에서 고배를 마셨고 독서실 총무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무기력함에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었던 김 씨는 결국 음란물에 빠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헤비업로더가 돼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음란물 유포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이다.
이 아무개 씨(42)는 서울 4년제 사립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다. 직업상 늘 바른 생활을 강요받았던 이 씨는 온라인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온라인 카페에 영상을 올리고 글을 쓰면 수많은 회원들이 댓글을 달아주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교수라는 사회적 신분에 억눌려 지내다 그렇게 많은 호응을 얻으니 기분이 좋아 계속 올리게 됐다”고 진술했다.
한편 인천에 ‘일본 음란물 전문 할아버지’가 있다면 강원도에는 아동 포르노만 집중적으로 다뤘던 유 아무개 씨(70)가 있었다. 지난 6일 강원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파일공유(P2P) 사이트에 아동·청소년이 등장해 성관계를 하는 영상을 게시한 유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유 씨는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P2P사이트를 통해 총 4000여 건에 이르는 아동·청소년 포르노물을 게시,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별히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컴퓨터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던 유 씨는 자신의 방에 3대의 컴퓨터를 설치하고 각종 음란물을 게재했다. 이마저도 저장 공간이 부족하자 별도의 하드디스크 5개를 구매해 카테고리별로 음란물을 정리해 보관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비슷한 시기 두 명의 70대 할아버지가 음란물 헤비업로더로 체포돼 충격은 두 배가 됐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