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찾으면 뜬다 했다” 납치감금→고의잠적 무게 이동 중
하 씨는 1999년 삼부파이낸스 부도 당시, 재무담당 부사장으로 일했고 정산법인 공동대표를 맡고 나선 내부 자본을 빼돌리는 바람에 지명수배가 내려진 인물이다.
경찰은 애초, 양 전 회장이 회사 돈을 빼돌린 하 씨를 만나러 갔다는 점과 사건 당일 양 전 회장의 휴대폰 배터리가 분리된 채 속초항 방파제 부근에서 마지막 신호가 감지됐다는 점을 들어 납치에 무게를 뒀다. 양 전 회장의 친아들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혹시 연락이 없거나 두절되면 무슨 사고가 있을 수 있으니 신고해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통해 양 전 회장의 실종이 납치나 감금이 아닌 의도적 잠적일 수 있다는 몇 가지 ‘결정적 단서’들이 발견됐다. 이후 수사방향은 의도적 잠적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진행되고 있었다.
기자와 만난 담당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납치보다는 의도적 잠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아직까지 양 전 회장이나 지명수배 중인 하 씨 모두 해외에 나간 흔적은 없지만 밀항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면밀히 추적 중이다. 최근에는 가족들과의 통화 내용까지 조사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 ▲ 양재혁 전 회장이 실종 전에 거처했던 서울 논현동의 고시텔 모습. 지난 5월부터 매달 35만 원을 내고 쪽방생활을 해왔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양 전 회장이 지난 5월10일 경부터 머물렀다는 서울 강남의 한 고시원. 그는 이곳에서 매달 35만 원을 내고 한 평 반 남짓한 쪽방에서 생활하다 지난 7월 13일 돌연 잠적했다. 고시원 사장은 양 전 회장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 분은 평소 남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전화통화를 해댔다. 거의 매일 개량한복을 입고 다녀서 기억한다. 아마도 무슨 사업과 관련한 통화를 했던 것 같다. 또 언젠가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원래 이렇게 살 사람은 아닌데. 인근에 집도 있고 그랬다’라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7월 즈음부터 보이지 않았다”라며 양 전 회장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경찰은 양 전 회장이 대구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에 방을 얻어 사는 것이 하 씨의 본가가 서울이라는 점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다음으로 그의 흔적이 잡힌 곳은 하 씨와의 약속 장소인 강원도 속초항 방파제 근처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곳에서 실종 당일 그의 휴대폰 배터리가 분리됐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처음에는 하 씨의 개입으로 인한 납치 가능성이 제기됐었지만 확인 결과 배터리가 분리된 신호만 잡혔을 뿐, 양 전 회장의 휴대폰은 근처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본인이 의도적으로 휴대폰을 분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의 종적이 마지막으로 잡힌 장소는 대구 대명동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였다.
7월 23일 그가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잡힌 것. 양 전 회장은 이곳에 결정적인 증거를 남겼다. 기자 확인 결과 문제의 대형마트는 대구 중동에 위치한 본가와 3km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차로는 불과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말 그대로 그의 집근처 동네마트였던 셈. 실종됐다는 양 전 회장이 놀랍게도 집근처 마트에서 목격된 것이다. 게다가 그가 결제한 신용카드는 아들의 것이었다.
▲ 양 전 회장이 사라진 지 열흘 만인 7월 23일 대구 집 근처 한 대형마트 CCTV 화면에 잡혔다. 그가 평소 즐겨 입는 개량한복 차림으로 여유롭게 쇼핑하고 있다. |
경찰 역시 이에 대해 “우리의 수사가 시작되고 난 뒤로부터는 양 전 회장이 아예 마트에서 모습을 감췄다. 마트에는 17명이 넘는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만약 그가 납치됐다고 한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마트에서 보인 행동 자체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라며 의혹을 부추겼다.
최근 양 전 회장의 측근이라고 밝힌 몇몇 이들은 한 지역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양 전 회장은 이제 공소시효가 만료돼서 돈을 찾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예전부터 돈을 챙겨 해외 자금세탁을 거친 뒤 미국으로 뜰 거라고 말했다”라며 도피설을 내놓는가 하면 “하 씨를 잡기 위해 실종신고를 고의로 내고 의도적 잠적이라는 전술을 펼치는 것이다”라며 고도의 전략설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일전에 양 전 회장이 지명수배 중인 하 씨와 징역형을 선고받은 직원 2명이 저지른 C 사의 횡령 건 피해자들의 소송비를 거둬 들였다는 점을 들어 ‘소송비 착복설’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담당 경찰은 “의문점이 참 많은 사건이다. 안타까운 것은 당사자인 가족들마저도 정보부족의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양 전 회장의 사업과 관련한 사정에 대해서는 별 다른 진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관련 투자자들마저도 진술이 많이 엇갈려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어찌됐건 최대한 단서를 확보해 수사가 장기화되기 이전에 조속히 해결한다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다. 지켜봐 달라”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은 누구
13년 전 부산 서민경제 뿌리째 뒤흔든 장본인
최근 한 달 넘게 행적이 묘연한 양재혁 삼부파이낸스 전 회장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월 13일 집을 나선 뒤 현재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그가 회사 공금을 횡령한 동업자를 만나러 갔다는 점에서 납치설이 제기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몇 가지 수상한 의혹이 발견되면서 자작극 의혹까지 번지고 있다.
양 전 회장은 1980년대부터 부산지역 대부업계에 뛰어들면서 신화를 써내려간 인물이다. 반면 회사 설립 단 4년 만에 부실경영과 공금횡령으로 도산의 길로 들어서며 부산지역 경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아마도 그 만큼 국내 금융업계에서 양 전 회장만큼 ‘명과 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양재혁 삼부파이낸스 전 회장(58)은 경남 의령 출신이다. 그는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을 가진 자였다. 1980년대 처음 주택건설업계에 뛰어든 이래 컴퓨터 유통업계까지 진출했다. 그가 사업의 세를 불리다 본격적으로 금융업계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당시 그는 부산의 사채업체 ‘부민투자금융’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양 전 회장이 현재까지도 파이낸스 할부금융사의 신화로 남아 있는 ‘삼부파이낸스’를 본격적으로 설립한 것은 1996년 1월께였다. 당시 친분이 있던 사채업자로부터 30억 원을 빌려 회사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는 회사를 세우면서 ‘연수익률 25~30%’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서민들과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회사 설립 이듬해, IMF사태가 터지면서 동남은행과 네 개의 부산지역 종금사들이 줄줄이 퇴출됐다. 삼부파이낸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지역 금융사들의 퇴출로 막대한 공백이 생기면서 지역 중소기업들이 삼부파이낸스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회사의 성장은 눈부셨다. 삼부파이낸스는 설립 2년 만에 전국 54개 지점을 세우고 일본과 미국에 해외지사까지 운영했다. 또한 당시 삼부파이낸스는 성장을 거듭하며 ‘삼부건설’ ‘삼부엔터테인먼트’ ‘삼부벤처캐피털’ ‘한결파이낸스’ 등 계열사까지 거느리게 됐다.
금융업은 물론 부동산과 영화·공연 등에도 투자를 감행했다. 특히 이 당시 삼부파이낸스는 <용가리> <짱> <엑스트라> 등 유명 영화와 공연 등에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 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자산 규모만 놓고 보면 부산은 물론 전국 1위 규모의 파이낸스 업체였다.
하지만 양 전 회장과 삼부파이낸스의 신화는 4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몰락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투자자들로부터 거둬 들인 투자금 상당수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 이전에 개인 비자금으로 빼돌리는가 하면, 신규 투자금을 종전 투자자들에게 이자로 지급하는 ‘돌려막기식’ 경영을 해왔던 것이다. 즉 양 전 회장과 회사는 4년 동안 ‘유에서 또 다른 유’를 창출하기는커녕 유사수신행위를 일삼았다.
당시 양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빼돌린 회사공금은 1100억 원을 넘었다. 여기에는 796억 원 상당의 고객투자금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만성적인 부실운영과 유사수신행위의 한계에 다다라 회사가 도산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 수만 명이 2280억 원의 피해를 입는 초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도산한 업체들의 피해 금액이 1조 원을 육박하기도 했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들은 현행법상 공적자금으로도 전혀 피해변제를 받지 못했다. 삼부파이낸스의 도산은 부산의 지역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을 넘어 당시 국가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결국 양 전 회장은 1999년 12월, 횡령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004년이 돼서야 출소할 수 있었다. 양 전 회장은 구속 직후에도 정산법인을 세워 재기를 노리기도 했다. 자신의 개인자산과 회사의 잔여자산 등 모두 2200여 억 원을 투입해 정산법인 C 사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재기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립 당시 공동대표를 맡았던 문제의 하 아무개 씨가 양 전 회장 출소를 즈음해 회사 자본금을 빼돌리고 잠적한 것이다. 이에 동조해 회사의 부동산 매각대금 58억 원을 빼돌리다 붙잡힌 장 아무개 씨와 김 아무개 씨 등 회사 간부들은 지난 3월경 법원(부산지법 형사7부)에서 재판을 받고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하 씨는 끝내 잡지 못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13년 전 부산 서민경제 뿌리째 뒤흔든 장본인
최근 한 달 넘게 행적이 묘연한 양재혁 삼부파이낸스 전 회장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월 13일 집을 나선 뒤 현재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그가 회사 공금을 횡령한 동업자를 만나러 갔다는 점에서 납치설이 제기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몇 가지 수상한 의혹이 발견되면서 자작극 의혹까지 번지고 있다.
양 전 회장은 1980년대부터 부산지역 대부업계에 뛰어들면서 신화를 써내려간 인물이다. 반면 회사 설립 단 4년 만에 부실경영과 공금횡령으로 도산의 길로 들어서며 부산지역 경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아마도 그 만큼 국내 금융업계에서 양 전 회장만큼 ‘명과 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양재혁 삼부파이낸스 전 회장(58)은 경남 의령 출신이다. 그는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을 가진 자였다. 1980년대 처음 주택건설업계에 뛰어든 이래 컴퓨터 유통업계까지 진출했다. 그가 사업의 세를 불리다 본격적으로 금융업계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당시 그는 부산의 사채업체 ‘부민투자금융’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양 전 회장이 현재까지도 파이낸스 할부금융사의 신화로 남아 있는 ‘삼부파이낸스’를 본격적으로 설립한 것은 1996년 1월께였다. 당시 친분이 있던 사채업자로부터 30억 원을 빌려 회사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는 회사를 세우면서 ‘연수익률 25~30%’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서민들과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회사 설립 이듬해, IMF사태가 터지면서 동남은행과 네 개의 부산지역 종금사들이 줄줄이 퇴출됐다. 삼부파이낸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지역 금융사들의 퇴출로 막대한 공백이 생기면서 지역 중소기업들이 삼부파이낸스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회사의 성장은 눈부셨다. 삼부파이낸스는 설립 2년 만에 전국 54개 지점을 세우고 일본과 미국에 해외지사까지 운영했다. 또한 당시 삼부파이낸스는 성장을 거듭하며 ‘삼부건설’ ‘삼부엔터테인먼트’ ‘삼부벤처캐피털’ ‘한결파이낸스’ 등 계열사까지 거느리게 됐다.
금융업은 물론 부동산과 영화·공연 등에도 투자를 감행했다. 특히 이 당시 삼부파이낸스는 <용가리> <짱> <엑스트라> 등 유명 영화와 공연 등에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 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자산 규모만 놓고 보면 부산은 물론 전국 1위 규모의 파이낸스 업체였다.
하지만 양 전 회장과 삼부파이낸스의 신화는 4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몰락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투자자들로부터 거둬 들인 투자금 상당수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 이전에 개인 비자금으로 빼돌리는가 하면, 신규 투자금을 종전 투자자들에게 이자로 지급하는 ‘돌려막기식’ 경영을 해왔던 것이다. 즉 양 전 회장과 회사는 4년 동안 ‘유에서 또 다른 유’를 창출하기는커녕 유사수신행위를 일삼았다.
당시 양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빼돌린 회사공금은 1100억 원을 넘었다. 여기에는 796억 원 상당의 고객투자금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만성적인 부실운영과 유사수신행위의 한계에 다다라 회사가 도산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 수만 명이 2280억 원의 피해를 입는 초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도산한 업체들의 피해 금액이 1조 원을 육박하기도 했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들은 현행법상 공적자금으로도 전혀 피해변제를 받지 못했다. 삼부파이낸스의 도산은 부산의 지역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을 넘어 당시 국가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결국 양 전 회장은 1999년 12월, 횡령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004년이 돼서야 출소할 수 있었다. 양 전 회장은 구속 직후에도 정산법인을 세워 재기를 노리기도 했다. 자신의 개인자산과 회사의 잔여자산 등 모두 2200여 억 원을 투입해 정산법인 C 사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재기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립 당시 공동대표를 맡았던 문제의 하 아무개 씨가 양 전 회장 출소를 즈음해 회사 자본금을 빼돌리고 잠적한 것이다. 이에 동조해 회사의 부동산 매각대금 58억 원을 빼돌리다 붙잡힌 장 아무개 씨와 김 아무개 씨 등 회사 간부들은 지난 3월경 법원(부산지법 형사7부)에서 재판을 받고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하 씨는 끝내 잡지 못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