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양경숙 수사에 중수부가 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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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31일 새누리당 연찬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의 모습. 왼쪽은 대검찰청 청사. 임준선·박은숙 기자 | ||
미래권력에 가장 근접한 박 후보와 사정당국의 중추인 검찰 수뇌부 간에 조성되고 있는 ‘신 밀월설’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박후보와 검찰 간의 밀월설 정점에는 이른바 ‘공천장사’ 의혹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공천장사’ 의혹 사건으로 동시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사건은 부산지검 공안부가 담당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 사건은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사안에 대해 수상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정도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양경숙 사건’은 전형적인 공안부 영역인 만큼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서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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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왼쪽)과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 ||
박 후보는 지난 4·11 총선 때 전권을 쥐고 새누리당 선거전을 진두지휘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사건은 박 후보의 대권가도에 적잖은 걸림돌이 될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검찰은 공천뇌물로 3억 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현영희 의원과 조기문 전 새누리당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사건의 핵심 인물인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해선 무혐의 처리로 사건을 마무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제공한 금품의 최종 목적지로 지목된 친박계 핵심인 현 전 의원이 무혐의 처리될 경우 박 후보 또한 공천헌금 사건 불똥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검찰이 현 전 의원을 배제한 수사 결과물을 내놓을 경우 이는 ‘박근혜 줄 서기’와 맞물린 전형적인 ‘봐주기 수사’라는 점을 부각시켜 역공을 펼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장사 수사와 달리 민주당 사건의 경우 중수부가 직접 나서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고 있다. 중수부는 친노 성향인 ‘라디오21’의 편성본부장 양경숙 씨(구속)가 4·11 총선 직전에 ‘공천장사’를 한 정황을 잡고 돈의 용처를 파헤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양 씨에게 10억 원 이상씩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관련자 3명을 구속하고 이들로부터 ‘박지원 원내대표 등을 보고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은 박 원내대표의 연루 가능성도 열어놓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의 이러한 ‘이중 잣대’ 수사에 민주당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 공천과 양 씨와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양 씨의 개인비리 사건에 불과한데도 박 원내대표 등과의 연관성을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검찰이 기획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8월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돈의 흐름을 보면 그 돈이 공천헌금인지 여부가 밝혀지는데도 검찰이 의혹만을 키워서 언론에 알려주는 것은 검찰-언론-집권당이 짜고 치는 정권교체 방해 시나리오”라고 강조했다. 이종걸 최고위원도 “대검 중수부가 박 원내대표에게 또 한 번 무딘 칼을 들이대려고 하는 데 대해 국민은 지겨워하고 있다”며 “정치검찰 공작수사에 대한 민주당의 대책반이 또 가동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압박했다.
검찰이 민주당의 ‘공천장사’ 의혹 사건에서 야권 정치인들을 겨냥한 저인망식 수사망을 펼치고 있다는 점도 밀월설을 부추기고 있다. 본 궤도에 진입한 대선정국에서 구체적인 물증도 없이 야권 인사들을 대거 수사 선상에 올려 놓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고도의 ‘기획 수사’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중수부를 전면에 내세운 이번 검찰 수사가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양 씨와 관련자들을 구속한 중수부는 양 씨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광범위한 계좌추적과 통화내역 조회 등 저인망식 수사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현재까지 실명이 거론된 민주당 인사는 박 원내대표뿐이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상당수의 야권 정치인들이 ‘리스트’에 오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 때 친노 성향 정치인들의 선거 홍보를 기획한 양 씨의 행적을 전방위적으로 뒤지다 보면 야권 인사들과 관련된 또 다른 비리 파일들이 드러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야권을 겨냥한 사정 칼날과는 달리 박 후보와 주변 인물들이 연루된 사건들에 대해서는 검찰이 속전속결로 수사를 매듭짓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은 8월 30일 박 후보가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씨를 만났다고 주장한 박 씨의 운전기사 김 아무개 씨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씨는 올해 초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통해 박 후보가 지난 2010년 11월 서울 G20정상회의 기간 도중 박 씨를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를 근거로 박 후보의 부산저축은행 로비 연루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자 박 후보는 “박태규 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반박하는 동시에 김 씨와 나꼼수 진행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기자, 박 원내대표 등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었다.
박 후보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는 삼화저축은행 고문변호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제기되는 등 ‘만사올통’(만사가 올케로 통한다)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상황이지만 검찰은 ‘나 몰라라’ 뒷짐만 쥐고 있는 형국이다. 미래권력에 가장 근접한 박 후보의 대권행보에 걸림돌이 되거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검찰이 알아서 척척 ‘교통정리’를 해 주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을 비롯해 거물급 검찰 인사들이 새누리당 대선기구에 영입된 점도 밀월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은 안 전 대법관은 2003년 8월부터 10개월 동안 여의도 정가를 벌벌 떨게 했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대검 중수부장 출신이다. 안 위원장의 추천으로 정치쇄신위원에 위촉된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은 당시 중수1과장으로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부분을 전담했었다. 새누리당 공보위원에 포함된 정준길 전 검사 역시 당시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 멤버로 활동한 바 있다.
민주당은 안 위원장 등 검찰 거물급 인사들의 새누리당행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사법부가 망연자실하고 있다”며 안 위원장의 새누리당행을 질타했다. 박범계 원내부대표는 “대법관직을 화려한 정치적 데뷔를 위한 수단으로 쓴 것이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신망받는 인사를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박근혜식 정치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비꼬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안 위원장의 사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실련은 성명을 통해 “안 전 대법관이 퇴임 후 곧바로 박근혜 대선 캠프에 참여한 것은 사법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보”라고 반발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중수부장을 역임한 대법관 출신이 특정 대선캠프에 합류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대 사건”이라고 전제한 뒤 “이는 안 위원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 나아가 사법부까지 ‘미래권력에 줄서기를 한다’는 역풍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검찰은 과거에도 대선이나 총선 등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인지수사를 자제해 왔다. 선거 개입 논란 내지는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특히 ‘검찰총장의 칼’로 통하는 대검 중수부가 대선을 앞두고 인지수사에 나선 전례는 극히 드물었다. 민주당 공천헌금 의혹 사건에 대해 ‘중수부 자체 첩보를 바탕으로 한 인지수사’라고 해명한 검찰은 스스로 입지를 좁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