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면박 주던 수사관이 남편으로…
▲ 김현희를 담당했던 K 수사관은 그녀가 강연하기 전날 마사지를 하라며 남들 몰래 오이를 챙겨주곤 했다. 사진은 김현희가 강연을 하기 위해 대기하는 모습. 사진제공=최창아 |
“이름이 좀 그렇네.”
김현희는 자신의 새 이름을 그리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받고서는 몇 번을 들여다보며 신기해하면서 좋아했다.
김현희는 결혼할 때까지 안가 생활을 했다. 안가라고 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어떤 곳인지 얼핏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궁정동 안가와는 전혀 다르다.
김현희는 바레인에서 압송된 후 처음에는 안기부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실이래야 작은 간이침대와 취조를 하기 위한 책상, 조그만 소파 등이 사람 다니기도 비좁게 놓여 있었고 한편에는 화장실이 있는 작은 방이었다.
조사실은 평소에도 어두컴컴하고 환기가 잘 안 되어서 수사관들이 조사를 하고 나오면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 피부병도 걸리곤 하는 열악한 곳이었다.
조사실에서 수사가 이루어져 김현희는 자신이 KAL기를 폭파한 북한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자백했다. 우리 수사관들도 그녀가 자백을 할 때까지 긴장의 나날을 보냈었다. 그러나 수사발표와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김현희나 수사관이나 좀 넓고 편안한 장소에서 보호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장소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조사실은 다른 사건도 조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김현희가 출입하다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해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김현희를 옮기는 것은 좋은데 어디로 옮겨? 다른 곳으로 옮기면 제대로 보안이 되겠어?”
“신변보호도 쉽지는 않습니다.”
수사관들은 김현희를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문제로 고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보안과 신변 보호였다. 수사관들은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한 뒤에 수사국 청사 내 조그맣게 원룸 형태의 방을 만들어 거기서 생활하기로 했다. 그곳은 햇빛도 잘 들고 장소도 넓어 활동하기가 편했고 김현희가 간단히 맨손 체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을 만든 뒤에 가구를 들이기 시작했다. 침대는 커튼으로 가려놓은 정도였지만 조그만 옷장도 놓았고 TV도 설치했다. 그러나 창문은 여전히 쇠창살로 막아놓았고 출입구도 철창으로 막아 경비원이 문을 열어주도록 하여 조사실이나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처음 조사를 받던 방보다는 훨씬 좋았다.
김현희는 새로 조성한 시설에서 공작원시절 밀봉교육에 대한 조사를 받았고 가끔 외국 수사기관의 면담, 목사님과의 성경공부를 위해 외출했다. 김현희에 대한 재판도 그곳에 있는 동안 진행되었다. 시간이 나면 그녀는 남한의 교과서나 소설책을 읽었고 나도 일본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일본어 회화 책을 보기 시작했다.
한번은 김현희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 때 내가 물었다.
“나니오 시마스까(무엇을 합니까)?”
“언니, 그게 아니라 ‘나니오 시테이 마스까(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하는 거예요”
김현희가 화장실에서 소리를 질러 고쳐주기도 했다. TV도 함께 보았는데 그녀는 특히 뉴스와 드라마 시청을 즐겨했다. 아직까지 한국 가정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그녀로서는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한국의 생활을 살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같이 붙어서 생활하다보니 사소한 것으로 부딪치기도 했다.
김현희는 보통 밤 10시나 11시에는 취침하지만 수사관들은 감시 겸 보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잠을 자면 안 되었다. 그녀를 위해 조명도 어둡게 하다 보니 책도 못 읽고 해서 조그마한 소리로 TV시청을 하고는 했는데 잠자리에 든 그녀로서는 그 소리도 귀에 거슬린 것 같았다.
“어머, 이게 뭐야?”
하루는 TV시청을 하려고 하자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 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김현희가 그렇게 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친한 K 수사관에게 말해서 TV에 잠금장치를 했나보다 하고 추측했지만 K 수사관이 우리에게 주의를 주면 될 것을 아무도 모르게 잠금장치를 한 것이 야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숫자를 조합해 잠금장치를 풀려고 했다.
비밀번호는 보통 4자리 숫자로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생일 등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비밀번호가 뭘까? 얘 생일인 0127일까?”
비밀번호를 입력했으나 풀리지 않았다.
“한국에 올 때 12월 16일이었으니 1216으로 해봐.”
우리는 이것저것 비밀번호를 넣어보았으나 여전히 안 풀렸다.
“혹시 북한과 관계된 6·25 아닐까?”
“6·25? 그럼 번호가 세 개잖아?”
“앞에 0을 넣고 0625를 눌러봐.”
누군가 그렇게 말하여 0625를 누르자 TV가 켜졌다. 우리 수사관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고 다시는 TV에 잠금장치가 걸리지 않았다.
김현희와 담당 K 수사관의 사이는 매우 가까웠다. K 수사관은 그녀가 바레인에서 온 이후부터 나와 함께 김현희와 같이 있던 담당수사관으로 나이도 지긋하고 또 성격도 자상하여 김현희와 대화가 잘 이루어졌다. 김현희도 K 수사관을 자신의 대부처럼 믿고 따랐다. 또 K 수사관은 김현희의 가치를 잘 파악하여 그녀가 폭파범으로뿐 아니라 한 여자로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 운동화다.”
K 수사관은 언론과의 인터뷰나 강연, 간증이 있을 때면 전날 저녁에 김현희에게 서류 봉투를 건네주었는데 실은 운동화가 아니라 오이였다. 오이 마사지라도 하라는 뜻인데 다른 사람들이 알면 창피할까봐 그렇게 전달해주곤 했다.
K 수사관이 신경을 써주자 김현희도 믿고 의지하면서 따랐다. 그녀는 안기부의 보호를 받고 있을 때나 결혼을 한 후에도 K 수사관과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으로 들었다.
저녁 식사 시간은 5시에서 6시 사이였다. 일찍 저녁을 먹다보니 수사관이나 김현희나 9시쯤에는 출출해서 야식을 사다먹을 때가 많았다. 그녀는 처음에 올 때처럼 체중이 늘까봐 조금만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수사관들은 밤샘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신경을 쓰지 않고 다 먹어치우곤 했다.
“이게 뭐야?”
어느 날 청소를 하려고 그녀 책상 옆의 커튼을 들추자 요플레 1개와 치즈 1장이 창문 틈에 숨겨져 있었다. 또 하루는 어디선가 시금털털한 냄새가 나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그녀 침대 밑에 둔 오렌지 상자에서 나는 냄새였다.
“이것 많이 먹으면 예뻐지니까 미스 김만 먹으세요.”
김현희에게 성경을 가르치던 목사님이 오렌지 한 상자를 선물로 주면서 농담 삼아 말했는데 그것을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 먹기도 전에 상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우습기도 했지만 북한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는 공작원이라 할지라도 먹을 것이 부족한 땅에서 자란 그녀에게 음식에 대한 욕심이 남아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김현희의 재판이 끝나자 안기부 청사 내에 그녀를 계속 보호하는 일이 불편했다. 그리하여 김현희를 서울 시내에 있는 안가로 옮겼다. 안가는 보통 공작원이나 귀순자들이 오면 그들이 편안하게 생활하면서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곳으로 일반 주택을 이용한다.
안가에는 담당 수사관들과 안가의 경호를 맡는 경호원, 식사를 해주는 아주머니 등이 있었는데 김현희는 수사관들 외의 다른 사람과는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도록 했다.
안기부 청사보다 안가에서의 생활은 좀 더 자유로웠다. 보통 하루 일과를 마치면 지하에 체육시설을 준비해 놓고 운동도 할 수 있게 했는데 공작원으로 고강도의 체력 단련을 받았던 김현희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운동은 탁구였다. 남녀 수사관들이 그녀와 편을 이뤄 탁구를 치고는 했는데 그녀는 꽤 잘 치는 편이었고 경쟁의식도 강해 조금이라도 지면 금세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나타났다.
식사는 담당 아주머니가 있었지만 아침식사나 휴일에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다. 아침에는 늘 간단히 햄, 달걀, 잼, 우유 등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는데 보통 김현희와 여수사관이 식사 준비를 한 다음 남자수사관을 불렀다.
“H 선생은 아침 식사를 하려면 세수라도 하고 오셔야지 더럽잖아요?”
김현희는 H 수사관에게 쌀쌀하게 면박을 주었다. H 수사관도 그때 안가에서 같이 근무했는데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안기부에 입사한 노총각 수사관으로 성격도 느긋하고 말도 느릿느릿하게 하는 여유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침에 식사 하라고 부르면 항상 제일 늦게 나타났다.
“어째 H 선생은 항상 제일 늦어요?”
김현희가 으레 H 수사관에게 면박을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김현희와 H 수사관이 훗날 내가 안기부를 그만둔 뒤에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H 수사관에게 그렇게 면박을 주던 김현희가 그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찌되었거나 H 수사관은 김현희가 면박을 주어도 별 반응 없이 묵묵히 식사를 한 뒤에 자리를 뜨곤 했다.
“H 선생은 노총각이라서 그런지 냄새도 나고 성격도 어찌나 느린지….”
김현희는 H 수사관이 없을 때 은근히 흉을 보기까지 했다. 한번은 그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던 목사님이 대화 중에 농담을 했다.
“미스 최는 결혼할 사람 없어요? 혹시 없으면 H 수사관은 어때요?”
목사님은 나나 H 수사관이 미혼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물었다.
“최 언니는 그런 타입 싫어해요.”
김현희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얼른 그 말을 받아서 내뱉었기 때문에 당시 다른 수사관들 모두 김현희가 H 수사관에게 호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무리 남녀 사이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만 내가 안기부를 퇴사한 후 1997년 12월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H 수사관을 그렇게 비난하더니 어떻게 결혼을 했지?’
나는 김현희가 H 수사관과 결혼했다는 소식에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정리=이수광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