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무는 비극 어찌하리오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최근 천 전 감독의 부인 최 아무개 씨가 자택에서 투신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입학비리 혐의로 한양대 감독직에서 해임된 뒤 불과 4개월여 만의 일이다. 사건의 진상과 당사자인 ‘불운의 아이콘’ 천 전 감독의 굴곡진 삶의 궤적을 추적해봤다.
지난 9월 12일 새벽 7시 10분경. 천보성 한양대 전 감독(59)의 부인 최 아무개 씨(58)가 서울 압구정 H 아파트 12층 자택에서 투신했다. 현장에서 만난 목격자에 따르면 최 씨는 아파트 화단 앞 아스팔트길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사건 다음날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도 최 씨의 투신장소에는 여전히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기자와 만난 강남경찰서 사건 담당 관계자는 “최 씨는 당시 남편 천 전 감독 등 가족들이 잠든 틈을 타 안방 창문을 넘어 그대로 뛰어 내렸다. 투신장소에서 별다른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가족 진술조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아직 최 씨의 자살 동기는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자살 동기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 씨는 남편의 연이은 악재로 인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천 전 감독은 입학비리를 이유로 해임된 상황이다. 선수시절부터 줄곧 엘리트코스를 밟아 온 천 전 감독은 연이은 악재로 인해 이제 야구계 ‘불운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천 전 감독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국프로야구 출범 첫 타석에 나선 선수라는 것이다. 지역 고교 야구명문 경북고와 한양대를 거친 천 전 감독은 현역시절 국가대표까지 지낸 명유격수 출신이다. 프로원년부터 3년간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로 맹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초창기 지도자로서도 나름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1986년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코치생활을 시작으로 미국 연수까지 거친 그는 1993년부터 LG 트윈스에 몸담는다. 1997년 이광환 당시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난 뒤, 그는 감독대행 자격으로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그해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놓으며 감독으로서 힘찬 첫발을 뗐다.
1997년 감독 대행 시절 천 전 감독은 백인천 당시 감독이 이끌던 삼성 라이온즈의 압축배트 의혹을 제기하며 일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KBO 측은 당시 석연치 않은 조사과정을 거쳐 결국 백인천 감독과 삼성 라이온즈의 손을 들어줬지만 프로야구 팬들은 지금까지도 천 전 감독을 초보감독임에도 선배감독을 상대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패기 있고 뚝심 있는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다.
능력을 인정받은 천 전 감독은 이듬해 정식 감독으로 팀을 이끌게 됐고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일구며 당시 젊은 나이에 ‘명장’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다음 시즌 재계약에 성공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천 전 감독은 그러나 1999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를 이유로 경질된 뒤 다시는 프로구단으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하게 된다. ‘독이 든 성배’로 유명한 LG 트윈스 감독직 잔혹사의 한 피해자로 남게 된 것이다.
이후 KBO 경기운영위원 등을 거친 천 전 감독은 5년 동안의 야인생활을 뒤로 하고 지난 2004년부터 모교인 한양대의 감독직을 맡게 된다. 프로 감독직은 아니지만 모교에서 후배들을 육성하는 무척 뜻 깊은 자리였다.
천 전 감독은 당시 옛 영광을 뒤로 한 채, 침체기를 걷던 한양대를 강하게 채찍질하며 전혀 다른 팀으로 만들어 놨다. 그리고 지난 2010년, 팀을 대학추계리그 정상에 올려놨다. 부임 6년 만에 전국제패에 성공한 것이다. 이듬해에는 야구월드컵 국가대표 감독까지 역임하며 프로에서 못 다 이룬 지도자의 꿈을 아마추어에서 꽃히우는 듯했다.
▲ 천보성 전 한양대 감독이 잇단 불운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천 전 감독의 부인이 투신한 현장. 최준필 기자 |
투서 접수 이후 천 전 감독은 곧바로 학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혐의 내용을 부인했지만 한양대 징계위원회 측은 학부모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더 있다 판단하며 학부모들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천 전 감독은 지난 5월 31일 부로 한양대 감독직에서 전격 해임됐다.
상급 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 사학 감사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천 전 감독은 학교 측의 징계와는 별도로 검찰로부터 입학비리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아직 좀 더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우리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에서도 조사와 징계가 있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 일로 인해 천 전 감독은 한때 프로야구 젊은 명장으로 추앙받던 영광스러운 과거를 뒤로한 채, 단 돈 몇 백 만 원에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한 지도자로 낙인찍히게 됐다. 학교로부터의 해임은 물론 검찰조사 결과와 교육과학기술부 징계사안에 따라 프로는 물론 아마야구 지도자로서도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지도자로서 재기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진 천 전 감독의 처지가 분명 부인 최 씨 등 가족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야구계 안팎에서는 최근 입학비리 연루와 부인의 투신자살 등 악재가 겹친 천 전 감독의 처지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