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과ㆍ화합형 선대위면 ‘Best’
▲ 박근혜 후보 선거기획단은 추석민심 관리 전략으로 측근비리 관련 대국민사과 등의 아이디어를 내놓은 상태다. 사진공동취재단 |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이번 ‘추석 대전’에서 패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떠들썩하게 만들 ‘빅 카드’도 없고, 친박진영에서는 아무리 쥐어짜도 안철수와 문재인의 ‘밥상 점령’을 막을 대책이 없기 때문에 한가위를 그냥 하루 중 하루로 보낼 것이란 말이 나온다. 물론 선거까지는 아직 90일 가까이 남아 ‘먼 길’이 예고되니 서두를 것 없다는 게 주요한 이유다.
“문재인이 나왔을 때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가 나왔을 때 여론조사 결과, 그것들은 그 사람이 잘해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였다. 안철수가 먼저 나오고 문재인이 뒤에 나와도, 박근혜가 안철수처럼 제일 나중에 나와도 사람만 바뀔 뿐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우리가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뒤에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라고 하지 않느냐. 문재인과 안철수가 ‘레이스’한다면 우리는 그냥 ‘콜’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에 우리에게 추석 카드는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진영에 있는 인사 중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은 한 핵심 인사의 전언이다. 박 후보 측의 이런 판단이 대세론에 안주한 오만함의 발로인지, 석 달 가까이 남은 거시적 관점에서의 예리한 분석인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박 후보 측의 이런 자신감은 그간 각종 위기를 돌파해 승점을 쌓아왔던 ‘선거의 여왕’이 쉽게 지지 않을 것이란 경험칙과, 일단 부전승으로 결승에 오른 박 후보가 준결승을 앞둔 문재인과 안철수의 기싸움을 좀 더 살핀 뒤 카운터펀치로 무엇이 좋을지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정치 베테랑의 느긋함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추석 밥상에 무엇을 올릴 것이냐’는 수많은 언론사의 한결같은 압박에 박 후보 진영이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정말이지 ‘답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앞서의 인사는 “박 후보가 가진 ‘2007년의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한가위 깜짝 카드를 기대하고 있지만 박 후보는 자신이 구상한 대권 시간표대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17대 대통령 선거를 1년 2개월 앞둔 2006년 10월 6일 추석 즈음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지지율이 처음으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를 앞섰다. 추석 직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고 “여성은 안보에 약할 것”이란 이야기가 회자되더니 공고해보였던 박 전 대표 지지율이 꺾였다. 추석 직후인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까지 하자 ‘이명박 우위’는 좀처럼 깨지지 않았고 박 전 대표는 패배했다. 그걸 두고 박근혜의 ‘추석 트라우마’라고 한다.
하지만 박 후보는 추석에 대한 상처는 없다. “그때하고는 다르다. 지금 주자 중 외교와 안보만큼은 박 후보가 가장 앞선다. ‘여성 대 남성’의 대결구도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박 후보는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태를 겪으며 선명한 대북관을 내놨고, 외국의 유명한 학술지(포린어페어스ㆍ외교안보잡지 Foreign Affairs를 말함)에 남북문제를 기고했다. 오히려 추석 전에 북한이 조금만 움직여주면 좋겠다.”
한 친박 인사의 솔직한 속내다. 또한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진 한 정치인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사석에서 밝힌 바 있다. 2007년 경선에서 패한 뒤 박근혜 후보는 “2012년은 완전히 내 식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근혜에게 차기는 없다. 이번에 이기든 지든 박근혜는 여의도 정치판에서 떠나게 된다. 박근혜는 ‘박근혜식 대권행보’의 시발점을 2012년 새누리당 경선에서 승리한 뒤부터로 생각했지만 싫든 좋든 2011년 말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진두지휘해야 했고 그만의 대권시간표를 조금 당겼다. ‘박근혜식’이라는 것은 바로 인연이 오래된 구 친박의 기용, 정당쇄신과 정치쇄신을 맡길 수 있는 이미지 좋은 외부인사 수혈, 그리고 지지세 확장을 도모하기 위해 야권 이슈를 끌어올 전문가 영입이었다. 박근혜라는 심장 빼고는 다 바꿀 수 있다는 것이 2007년 이후 이를 갈아온 박근혜식 대권구상이란 이야기였다.
▲ ‘대한민국 ROTC 정무포럼 2012 정례 세미나’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가 기념촬영을 위해 단상으로 나와 머리를 만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그것은 공천잡음, 금품수수 등 측근비리에 대한 대국민사과와 측근 관리 에러(error)에 대한 국민 눈높이에서의 종합 대책 발표다.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가 탈당하거나, 당이 제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박 후보 본인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큰 수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뒷얘기지만 최근 박 후보가 당 정치쇄신특위 회의에 참석해 “그 누구도 이 투명한 환경 속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그런 생각을 마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의 서두에는 ‘저를 비롯한’이라는 어절이 있었다 한다. 중간에 왜 이 두 어절이 빠졌는지 모르지만 원래는 “저를 비롯한 그 누구도…바랍니다”가 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은 빠지고 정치쇄신 하겠다고 해서는 국민적 감동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식상한 이야기이지만 정몽준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김태호 임태희 등 경선 경쟁자를 중용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특히 이 의원에 대해선 이 의원이 만나주지 않으면 자택으로 찾아가 화합하는 모습도 필요하다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도 나왔다 한다. 과일이라도 한 봉지 사서 이 의원이든 그의 부인이든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 함께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안을 수도 있다. 박 후보로서는 유신에 대한 사과가 될 수 있고, 이 의원으로서는 과거와의 화해로 비칠 수 있다. 때마침 이 의원이 분권형 개헌추진을 위한 범국민운동기구를 결성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세론이 주춤한 틈을 타 ‘개헌 카드’로 박 후보를 압박하고, 개헌에 대한 자기 몫을 챙기면서 이 의원 스스로 자기 지지세를 모으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결국 이들은 내버려둘 경우 진지 속에 적을 두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추석 전에 중앙선대위를 조기에 발표하자는 이야기도 위와 궤를 같이 한다. 박근혜가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집단이 결집할 수 있으니 중앙선대위에서 역할을 주고 입막음하자는 내부단속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캠프 한 관계자는 “선대위는 상향식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이미 흘러들어갔기 때문에 선대위 중책부터 인선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종박’(從朴)으로까지 불리는 진골성골 친박이 중앙선대위 인선에서 모두 물러나는 것도 오르내렸다. 후보는 멋진데 측근이 잘 모시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반성과 함께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모든 직책에서 자진사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박 후보의 불통 이미지부터 인의 장막에 쌓여있다는 오래된 지적으로부터 헤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인연이 아니라 자신이 정치권에 입문하고 나서 그의 곁으로 모인 친박계 인사들에 대해선 박 후보가 그 어떤 부채의식도 없다는 점이 이 부분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재평가’에 있다면 이번 대선에서 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이 되지 않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만은 건드리지 말라는 생각이라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향한 권력의지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이번 ‘추석 카드’는 버려도 무방하다는 것이 박 후보를 돕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앞으로의 공과는 결국 박근혜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