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개’ 대상의 명확성 드러내…‘셔터스피드’ 움직임의 이유 표현…‘화각’ 이미지에 서사 부여
#조리개
조리개는 눈의 동공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렌즈로부터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과 더불어 초점을 잡은 피사체 주변으로부터 선명하게 보이는 구간을 결정한다. 조리개 구멍이 작으면 사진의 모든 부분이 선명하게 나오는데 이를 ‘핀포커싱’이라 하고 조리개 구멍이 크면 초점을 잡은 부분만 선명하게 나오고 나머지는 희미하게 표현되는데 이를 ‘아웃포커싱’이라고 한다.
새벽빛의 질감과 함께 전통춤인 검무의 움직임을 야외서 촬영한 사진이다. 무용수의 모습과 함께 풍경도 선명하게 담을 수 있었으나, 표현하고 싶은 건 검무를 추는 무용수의 모습이었기에 의도적으로 조리개를 개방해 춤과 움직임에 집중했다. 검무를 추며 길을 따라 내려오는 무용수의 움직임과 호흡이 ‘아웃포커싱’의 효과로 아련한 새벽의 푸른 기운과 함께 사진에 봉인됐다.
#셔터스피드
빛을 받아들인 카메라에 상이 맺히는 곳을 촬상면이라고 한다. 셔터스피드는 촬상면 앞에 있는 셔터막이 열리고 닫히는 속도를 말한다. 셔터스피드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과 함께 움직이는 피사체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빠른 셔터스피드는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포착하고 느린 셔터스피드는 움직임의 잔상을 남겨 동적인 효과를 준다.
무대 위에서 펼치는 움직임의 향연을 보면서 문득 ‘무용수들의 움직임 속도가 각자 다른데 저것을 순간포착이라는 명분으로 동일한 속도처럼 보이게 사진을 찍는 것이 과연 옳은 표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의 속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특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이유를 생각하며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한 화면 안에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느리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모든 움직임을 포용할 수 있는 적정 셔터스피드로 촬영을 했을 때 나온 결과물이 위의 사진이다.
#화각(초점거리)
화각은 렌즈를 통해서 카메라가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각을 말한다. 화각이 넓으면 초점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에 넓은 범위를 촬영할 수 있지만 피사체의 크기가 작아지고 원근감의 왜곡이 발생한다. 화각이 좁으면 초점거리가 길기 때문에 아주 좁은 범위만 촬영할 수 있는 반면 멀리 있는 피사체를 클로즈업해 확대 촬영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드넓게 펼쳐진 초록색 필드 위에 삶과 죽음처럼 시작과 끝이 같은 홈 플레이트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린 야구를 소재로 만든 무용작품이다. 무대를 가득 채운 잔디의 광활함 속에 있는 무용수의 모습이 어쩌면 인생이라는 광활함을 헤매고 있는 우리의 모습 같았다. 그래서 움직임 자체보다는 움직임을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렌즈의 화각으로 공간의 여백을 극대화해 촬영했다. 사진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속 작은 광활함.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정지된 이미지며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담고자 하는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수치를 정하고, 프레임 안에 얼마나 넓게 혹은 깊게 보여줄 것인지를 화각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인 사진이 보는 사람들에게 오롯이 전달돼 각자의 삶 속에 또 다른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
옥상훈 공연예술사진작가, 스튜디오 야긴 대표, 온더고 필름 디렉터. 국악반주에 맞춰 추는 승무에 반해 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올해로 19년이 되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서울무용제(SDF), 창작산실,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 등 다수의 공연페스티벌과 여러 기관 단체, 안은미컴퍼니,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서울교방 등 다양한 공연 단체들과의 작업을 통해 사진으로 공연을 담고 있다.
옥상훈 스튜디오 야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