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시각 언어를 본질로 삼는 예술이다. 그런데 보는 감각은 많은 오류를 품고 있다. 이런 이유로 회화는 보는 방식에 관한 다양한 방법을 만들었다. 회화의 발전은 보는 방식의 변화에 의해 이루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회화는 결국 불안전한 눈의 속성을 담아낸 예술인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것이 ‘착시’다. ‘착시’는 잘못 보거나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다르게 보는 것이다. 눈속임인 셈이다. 그런데 회화에서는 이를 통해 유쾌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거나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경우가 많다.
서양 회화는 이러한 눈속임 안에서 자라온 예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눈속임이 원근법이다. 평면을 입체로 보게끔 만드는 착시 현상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평한 화면인 그림을 보면서 공간이나 입체적 물체를 느끼게 되는 것은 원근법을 이용한 착시의 결과다.
서양 회화는 원근법을 발명한 르네상스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평면 속에 현실의 공간을 재현하는 마법 같은 착시 현상 덕분이다. 20세기 중반에는 착시 현상을 이용한 새로운 방식의 회화가 나타났다. 반복되는 기하학적 선이나 면,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화면을 보여주는 회화였다. 이를 미술사에서는 ‘옵티컬 아트’라고 부른다. 착시를 이용하는 추상 회화다.
신소라는 옵티컬아트의 21세기 버전에 도전하는 작가다. 다양한 재료의 성질을 이용하여 이 시대 감각에 맞는 착시 효과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렌티큘러다. 광고 간판이나 다양한 상품 디자인에서 시각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공업용 시트지다. 빛의 굴절 효과를 내기 때문에 각도에 따라 색채가 변하거나 움직임과 입체감이 나타나 시각적 충격을 준다.
신소라는 많은 실험을 통해 재료의 성질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착시 현상을 보여주는 회화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율동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화면과 입체적 효과을 부각한 화면으로 나누어진다.
리듬감이 나타나는 화면의 작품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색채의 변화도 보인다. 그림 앞을 지나가면 화면이 출렁거리듯 일정한 패턴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이 계열 작업은 착시 효과를 극대화해 운동감을 강조한다. 작가는 “우리 세대의 감각을 움직임으로 담아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입체적 시각 효과에 방점을 두는 작업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렌티큘러가 품고 있는 선의 방향을 지그재그식으로 엇갈리게 배치해서 입체감을 높인다. 격자무늬가 나타나는 화면은 흡사 미니멀한 추상 회화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방향성의 선 때문에 어긋나 보이지만 이들이 모여 시각 효과가 뛰어난 회화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