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지역지서 기자생활, 온라인서 극우성향 활동…‘이재명 피습 흉기 종이칼’ 음모론 콘텐츠 제작도
#사전투표소 카메라 설치에 발칵
3월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 사전투표소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보다 앞선 3월 11일 경상남도 양산시 선관위는 건물 게시판에 사전투표소를 공고했다. 그로부터 7일 뒤인 3월 18일 문제가 터졌다. 양산시의 한 행정복지센터 2층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가로 10cm·세로 8cm 정도의 카메라가 발견됐다. 카메라는 사전투표소인 대강당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3월 28일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와 양산시 등은 불법 카메라로 추정되는 장비가 발견됐다고 공개했다.
카메라에는 ‘KT 통신 장비’라고 적힌 라벨이 붙어있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통신 장비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장비가 그대로 있자 이를 수상히 여긴 한 직원이 행정복지센터 측에 알렸다. 복지센터 측은 이 업체에 문의했고, 업체와 무관한 것으로 확인했다.
양산시는 이 사실을 인지한 다음 시내 총 13곳의 사전투표소를 점검했다. 점검 결과 정체불명의 카메라 충전 어댑터가 추가로 발견됐다. 이 어댑터에도 KT 통신 장비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시는 이를 불법 카메라 관련 장비로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인천 논현경찰서는 3월 29일 건조물침입 및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로 A 씨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3월 28일 A 씨를 경기도 고양시 소재 자택에서 긴급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인천, 경남 등 전국을 돌며 사전투표소와 개표소가 설치될 장소에 몰래 침입해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3월 31일 구속됐다. 법원은 A 씨가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A 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앞서 카메라를 설치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사전투표 인원을 점검해 보고 싶었다. 사전투표가 본투표와 차이가 크게 나서 의심스러웠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남 양산에서 차량에 동승한 남성(B 씨)과 범행을 공모했냐”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A 씨는 건조물침입 및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로 4월 5일 검찰에 송치됐다.
A 씨는 공범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경남 양산경찰서는 앞서 3월 31일 A 씨와 동행하며 범행을 도운 것으로 추정되는 70대 남성 B 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B 씨는 A 씨가 양산에 위치한 사전투표소 4곳에 불법 카메라 장비를 설치할 때 동행하며 도운 혐의를 받는다. B 씨는 A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로 전해졌다.
공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한 명 더 있었다. 50대 남성 C 씨가 추가로 경찰에 붙잡혔다. C 씨도 A 씨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4월 1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추가로 검거된 50대 공범은) 경남 양산 쪽에 있는 사람이고, 같이 공모하고 범행을 도왔다는 정황이 확인된 사람”이라고 전했다. B 씨와 C 씨는 A 씨와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공모자가 더 있는지 확인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정체불명 카메라가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 3월 28일 전국 지자체에 사전투표소 점검을 지시했다. 점검 결과 불법 카메라로 의심되는 장비가 발견된 지역은 부산 북구 1곳, 울산 북구 1곳, 서울 2곳(강서구 1곳, 은평구 1곳), 대구 남구 3곳, 경기도 4곳(김포시 1곳, 고양시 2곳, 성남시 1곳), 경남 양산시 6곳, 인천 9곳(남동구 2곳, 계양구 3곳, 연수구 3곳, 부평구 1곳) 등 26곳이다.
경찰은 A 씨를 조사한 결과 총 41곳에 잠입한 정황을 확인했고, 이 중 36곳에서 정수기 옆 등에 설치된 카메라를 발견해 회수했다. 이 36곳에는 행안부가 불법 카메라가 설치된 장소로 파악한 26곳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몰카 설치 암시글 올리기도
A 씨는 안동 지역 한 지역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매체 홈페이지를 보면 A 씨는 2021년 1월 5일부터 같은 해 5월 27일까지 기사를 올렸다. 기사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 발생 의혹 △ 한강 의대생 사망사건 관련 의혹 △ 5·18 희생자 암매장설 부정 △부정선거론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이 매체 관계자는 “(A 씨는) 오래전에 관뒀고 (매체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A 씨는 2021년 5월 31일 한강 의대생 사망사건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를 개설했다. 카페에는 21대 총선 부정선거론, 코로나 백신 관련 의혹, 한강 의대생 사망사건 관련 의혹 등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다만 운영자인 A 씨의 글은 2021년 9월 1일을 마지막으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앞서 A 씨는 2019년 1월 23일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A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6번 정지됐다. 음모론성 콘텐츠가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A 씨의 실시간 방송을 보면 먼저 극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게시글을 리뷰한다. 그 다음 5·18 관련 음모론, 백신 부작용 의혹, 사전투표 조작설 등의 주장을 시청자들에게 말한다. 영상 한편에는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를 올렸다. 그는 개표 조작 의혹을 믿는 시청자들의 후원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음모론이 담긴 영상도 제작했다. 1월 2일에 있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관련 음모론을 다룬 콘텐츠가 눈에 띈다. 이 대표를 찌른 흉기가 종이칼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제 사용된 흉기는 총길이 18cm, 날 길이 13cm의 개조된 등산용 나이프였다. 선관위에 전화해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주요 콘텐츠다. A 씨는 전화로 선관위 관계자에게 고성을 지르거나 직접 찾아가 항의하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7번째 채널 커뮤니티에는 불법 카메라 설치를 암시하는 내용의 공지글을 올렸다. 공지글에서 A 씨는 “당분간 방송을 띄엄띄엄하겠다. 부정선거 감시 장비 준비 문제로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다”며 “3월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선거감시 준비할 거라서 방송을 많이 못 할 것 같다”고 적었다. 다른 공지글에는 “오늘 본투표 인원점검 대원을 모집하겠다”며 “촬영이 아닌 다른 방법이다. 하루 종일 서 있을 필요도 없다”고 썼다.
3월 26일자 실시간 방송에서는 “(22대 총선) 개표장에 들어가시는 분들은 장비라도 하나 사서 가져가라”며 “카메라 거치대 이런 거 사서 들어가라. 상시촬영하게”라고 했다. 시청자들에게 개표장 내부를 몰래 촬영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20대 대선(2022년 3월 9일)과 강서구청장 선거(2023년 10월 11일) 등에서 투표장에 카메라를 설치한 정황도 드러났다. A 씨는 자신의 채널에 유권자들이 투표장 내부가 촬영된 영상을 공유했다. 카메라는 투표소 안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영상에는 기표소가 설치된 공간으로 들어가는 유권자들의 모습이 담겼다. 유권자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없이 그대로 노출됐다.
구속된 다음인 4월 4일에는 A 씨의 누나라고 밝힌 사람이 입장문을 올렸다. 입장문에는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 신청을 했으나 도주 우려가 없고 거주지가 분명함에도 모두 기각됐다”고 밝혔다. 이어 “투표장과 개표장에서의 촬영과 녹음 모두 불법은 아니다”며 “언론은 마치 기표된 투표지 촬영을 위해 기표소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한 것처럼 클릭장사를 하기 위해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고 ‘몰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이용하여 사실을 왜곡했다. (A 씨는) 투표인원수에 대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투표장 입구에 출입하는 사람의 다리만 촬영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글 작성자는 A 씨의 계좌를 올리며 후원금도 요청했다. 4월 5일 기준 모든 영상은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 작성자의 주장과 달리 공직선거법 제163조는 “투표하려는 선거인·투표참관인·투표관리관, 읍·면·동선거관리위원회 및 그 상급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과 직원 및 투표사무원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다”고 규정한다. 유권자나 참관인이 아닌 A 씨는 투표소에 들어갈 권한이 없는 셈이다. 선관위는 일요신문에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4월 4일 서울 용산 이촌1동 사전투표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불법 카메라에 대해서는 선관위에서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불법카메라가 설치됐는지 여부를 전국 3500여 개 투표소에서 점검하고 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선관위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투개표준비에 만전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