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에 자연과 우주, 사람의 길을 담다
윤도는 여러 개의 동심원이 그려진 원반에 24방위를 새기고 그 한가운데에 지남침을 장치해 방향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윤도의 동심원에는 음양오행 팔괘 십간십이지 이십사절기가 담겨 있으며, 이 중에서 팔괘 십간십이지를 조합해 각각의 방위가 배치된다. 윤도를 동양의 우주관을 품고 있는 나침반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주역과 역법이 전해지고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방위를 살필 수 있는 윤도가 제작돼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풍수 지남침’은 신라 후기부터 발달하였고, 고려 전기에는 풍수음양지리와 연결되어 지관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구로 사용되었다.
‘윤도’라는 명칭이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시대이다. ‘선조실록’(선조 33년 9월 23일 기사)에는 지리에 밝은 명나라 사람이 나경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윤도처럼 생겼다고 기록돼 있다.
윤도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풍수가뿐만 아니라 뱃사람이나 여행자, 일반인들이 방향을 파악하는 데 이용되는 등 생활과학 도구로 널리 쓰였다. ‘일성록’(정조 14년 7월 29일 기사)에는 표류해 온 유구국(현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윤도를 주어 돌아갈 뱃길의 방향을 파악하도록 했던 일화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에 윤도는 자침이 남쪽을 가리킨다 하여 지남철(指南鐵), 몸에 차고 다닌다 하여 패철(佩鐵), 부채에 매달고 다녔다 하여 선추(扇錘)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사대부들은 선추 표면에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 실용적인 멋을 뽐내기도 했다.
윤도의 재료는 주로 오래된 대추나무를 사용하는데, 이는 목재 결이 곱고 단단하여 정교한 조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윤도는 쓰임새에 따라 만드는 방식이 다소 다르지만, 크게 ‘모양 만들기’, ‘층수 정하기 및 그리기’, ‘분금’, ‘각자’, ‘색 입히기’, ‘자침 만들기’, ‘자침 얹기’, ‘주사 입히기’, ‘자오 맞추기’ 등 여러 공정을 거쳐 제작된다.
대추나무를 원통형으로 깎아 뚜껑과 몸체를 만드는 과정이 ‘모양 만들기’이다. 이어 몸체(윤도판)에 중심점을 잡고, 새겨 넣을 글자 수를 고려해 바깥쪽부터 걸음쇠로 차례로 동심원(층)을 그려나가는 작업이 ‘층수 정하기 및 그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각 층별로 칸을 계산해 선을 긋는 것을 ‘분금’이라 하고, 분금해 놓은 각 칸에 조각칼로 해당 글자를 새기는 것을 ‘각자’라 한다. 특히 표면에 작은 글씨를 새겨야 하는 각자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윤도장의 핵심 공정이다.
‘색 입히기’는 윤도판 전체에 먹칠을 해 말린 뒤, 자침이 들어갈 중앙원을 손질하고 이후 고운 옥돌가루를 판에 칠해 분금과 각자에 흰색을 입히는 과정이다. 뒤이어지는 ‘자침 만들기’는 쇠바늘을 불에 달구고 다듬어 자침의 모양을 만들고 중앙에 구멍을 내어 균형을 맞춘 뒤, 자연 자석에 붙여 자력을 입히는 공정이다.
그 다음으로 주석으로 만든 받침대를 윤도판 중앙에 박고 그 위에 자침을 얹는 게 ‘자침 얹기’, 윤도판에서 동서남북에 해당하는 글자에 붉은색 주사를 입히는 과정이 ‘주사 입히기’이다. 끝으로 자오(남북)가 맞는지 확인하는 ‘자오 맞추기’까지 마치면 비로소 하나의 윤도로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전통 윤도는 근대화를 거치며 서구 문물이 보급되고 풍수지리설이 쇠락하면서 그 쓰임새가 크게 줄게 되었다. 근래에는 일부 풍수가나 소장가들에 의해 주문 제작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 고창군 성내면 낙산 마을은 조선시대에 흥덕현에 속했던 곳으로 ‘흥덕 패철’이라는 고유명사가 생길 정도로 윤도 제작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 마을에서 330년 넘게 이어져온 전통 윤도 기술은 현 윤도장 기능보유자인 김희수까지 4대째 전승되고 있다. 김희수 보유자의 아버지 김종대 선생은 윤도장 명예보유자이자 초대 보유자(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기도 하다.
윤도장의 해질 대로 해진 손끝은 전통 윤도를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이제는 공장에서 나침반을 찍어 내고, 스마트폰 앱으로도 방위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의문이 하나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들 부자는 대체 왜 이리 지난한 일을 대를 이어 해내고 있는 걸까. 김종대 명예보유자의 말마따나, 아마도 윤도에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사람의 길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료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