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서 중국인 건물주 ‘20억 전세사기’ 경보…“다가구 주택 전세 특히 위험”
이들 세입자들의 임차보증금을 모두 합하면 약 22억 원. 전세 계약이 만료된 한 임차인은 보증금 1억 3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해 지난 3월 말 법원으로부터 임차권 등기명령을 받아낸 상태다.
이 지역에는 이 중국인 건물주 A 씨가 소유한 신축 다가구 건물은 한 채 더 있다. 세입자들의 계약 만기가 대부분 1년 이상 남아 있지만 향후 보증금 반환 사고가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0일 현장에서 만난 전세 임차인 B 씨는 “건물주 관련 이야기는 알고 있고, 상황을 알아보는 중”이라며 “최근에 건물주와 연락을 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월세를 살고 있다는 임차인 C 씨는 “건물주가 중국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요즘 세입자들과 연락이 안 됐다는 얘기는 지금 처음 듣는다”며 “나의 월세 보증금은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최우선변제금 한도 안에 있어 그나마 안전장치가 있지만 이 건물엔 전세 세입자들도 있는데(걱정된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신고가 줄을 잇는 상황에서 늘어나는 ‘외국인 집주인’에 대한 세입자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은 본국이나 타국으로 이동해 자취를 감출 경우 소재 파악이 어려워 보증금을 통째로 떼일 우려가 크다.
외국인들의 이른바 ‘K-부동산 사냥’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취득 건수는 2010년 4307건에서 2023년 1만 5614건으로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매입 지역은 △경기(6686건) △인천(2328건) △서울(1668건) △충남(1441건) 순으로 많다.
국적을 보면 중국인이 전체의 65.1%(1만 157건)를 차지해 압도적이다. △미국인(15.2%) △캐나다인(3.6%) △베트남인(2.5%) △러시아인(1.8%) 등과 비율 격차가 크다. 현재 중국인이 소유한 국내 주택은 약 4만 8000세대에 이른다.
외국인들의 국내 부동산 매수는 대부분 임대 목적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임대인과 체결된 임대차계약은 2019년 1만 건을 지나 2023년 1만 7786건까지 늘었다. 지역은 서울(4612건)과 경기(3814건)에 집중됐다. 인천(499건)과 충남(301건)이 그 뒤를 따랐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외국인들이 서울·경기 지역 주택의 안정적인 임차 수요를 주목하며 매수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본다. 주택을 구입할 때 국내 금융사에서 대출도 받을 수 있어 이를 적극 활용한다.
임대 수익 목적으로는 특히 다가구주택의 인기가 높다. 오피스텔이나 빌라(다세대)는 세대마다 소유주가 모두 다르지만 다가구주택은 전 가구의 소유주가 곧 건물주 1명으로, 이 건물주가 약 20가구(법정한도 19가구) 세입자와 동시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 다가구 전세 계약은 정부기관(HUG)의 보증 보험 가입도 어려운 편이다.
현재 국내에서 발생하는 전세사기 가운데 임대인이 외국인인 비율을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다. 지방자치단체가 전세사기 피해를 최초 접수해 집계할 때 임대인 국적을 별도 분류하지 않고 정부에 전송 처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자가 거주나 공장·상점 설립 등 생산적 목적이 아닌 임대 사업 목적으로 국내 주택을 매수하는 것은 점차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보증금 규모가 큰 전세 임대 사업은 즉각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융사 대출은 담보물이 있어 이를 팔아 원금 회수라도 할 수 있지만 전세 보증금은 사금융 성격이어서 임대인이 도망가면 임차인이 채권 행사를 하기 어렵다”며 “외국인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돈을 빌리는 격인 전세 임대 사업을 계속 하도록 허용할지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취득을 국가 간 상호주의 관점에서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받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 국민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토지 영구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반면 이들 나라 국민들은 우리 건물뿐 아니라 토지 소유권까지 영구 취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차별이고 불합리하다”며 “우리 국민에게 엄격히 적용하는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외국인에겐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적용하는 관행도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