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화재 일어나도 사람보다 아파트 가격 걱정…개인도 이윤 좇는 기업처럼 행동
“뉴스에 우리 아파트가 나오면 값만 떨어진단 말이에요.” 서울 강남의 B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에서 부녀회장이 정색하며 기자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드라마에서는 부부 싸움 과정에서 부인이 그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아파트 계단에 굴러떨어져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부녀회장은 기자들을 가로막고 “사망 사건이 보도되면 아파트 이미지가 나빠져 집값이 떨어진다”라며 취재를 못 하게 했다. 이런 풍경은 단지 드라마 속 B 아파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도시의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강도 사건이 일어나도, 불이 나도 다친 사람을 걱정하기보다는 집값을 걱정하는 서글픈 세상이 되었다.
“아파트값이 안 떨어질까?” 몇 년 전 서울 강남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 헬기가 충돌하는 사고가 나자 사람들이 건넨 말이다. 고층 아파트에 헬기가 충돌한 것은 사상 초유의 충격적인 일인 데다 해당 아파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초대형 아파트여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한적한 시골집에 헬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을까? 아마도 헬기 추락으로 다친 사람은 없는지, 집은 안전한지부터 물었을 것이고, 시골집 가격이 어떻게 될지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파트 헬기 충돌 사고 소식을 듣고 아파트 가격의 향배를 묻는 것은 뭔가 비정상적이다. 혹시 사람들이 무심코 던졌을 그 말 속에는 아파트를 투자재로 보는 가치관이 자신도 모르게 불쑥 드러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맹자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어찌 꼭 이익만을 말하는가(하필왈이·何必曰利)”라고 일갈하지 않았을까.
돈 중심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대해 미국의 사회평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코퍼러티즘(Corporatism, 기업 권력이 지배하는 체제) 행동 양식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우리는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윤을 목표로 하는 기업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기업의 논리는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는 논리고, 세계를 보는 렌즈”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돈을 버는 기업처럼 행동하려고 한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하니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고,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취급을 받는다. 인류 역사 500만 년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자본주의가 출현한 시간은 불과 4초라고 한다.
재테크의 역사는 더욱 짧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윤 지향적 사고의 한 형태인 재테크가 마치 전부인 양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소모한다. 우리의 의식구조에 집을 사고파는 교환의 대상으로 보는 왜곡된 가치관이 안개비처럼 스며들었다. 기업적 논리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보편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다. 그 이면은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인간의 또 다른 이기심이나 탐욕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민이나 중산층에게 집은 사실상 전 재산으로 소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집이 재테크 이전에 삶을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시돼야 한다. 아파트 가격에 올인하는 삶은 그 가격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오간다. 가격이 모든 것이기에 요즘처럼 가격이 내려가면 모든 것을 잃는 듯한 상실감에 빠진다. 그만큼 마음의 고통과 좌절이 클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홈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