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급택시가 문제인데 우릴 의심해?
▲ 서울시는 택시운수 종사자 9만여 명의 범죄 경력을 분기마다 단계적으로 조회하여 부적격자를 퇴출시키기로 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일요신문DB |
지난 8월 2일 택시 자격 취득 요건이 강화된 개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령이 시행됐다. 개정 법령은 범죄자의 택시운전자격 취득 제한 기간을 2년에서 20년으로 확대하고 취득할 수 없는 범죄도 기존의 살인, 마약 외에 아동청소년 성범죄, 상습 음주운전을 추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5일 개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령에 따라 택시기사의 범죄 경력을 조회하는 문제를 경찰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택시운전 자격증 취득 때에만 범죄 경력을 조회해 자격 여부를 판단했지만 앞으로는 모든 시내 택시기사의 범죄경력을 파악해 반사회적 범죄 사실이 발견되면 자격 취소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시는 내년까지 신규 취업자와 기존 택시기사 등 서울 시내 택시운수 종사자 9만여 명의 범죄 경력을 분기마다 단계적으로 조회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택시운수 종사자 중 범죄경력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택시 운전자들과 택시운수회사 관계자들은 전과 기록을 가진 택시기사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의 한 관계자는 “교통회관에서 택시 운전 자격증을 취득할 때 신원조회를 해서 문제가 되는 전과기록이 있으면 자격증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벌어진 택시 강력 범죄의 범인들은 대부분 불법도급택시 운전자들”이라며 “이번 신원조회로는 그들을 적발해내지 못하는데 시민들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겠느냐”며 서울시 조치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기자가 만난 택시기사 A 씨는 “한 운수회사에 평균 150명의 택시기사가 있는데 그 중 전과자 출신은 많아야 한두 명이다”라고 전했다.
B 택시운수회사의 한 관계자 역시 택시 운전자 중에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관계자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은 일의 강도에 비해 푼돈을 만지는 장사”라며 “중범죄 전과를 가진 사람들은 택시기사라는 직업에 만족 못해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수입 때문에 일부 택시기사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는 의견이 있다. 택시기사 C 씨는 “기사들 중 일부는 ‘걸리면 까짓 거 한 번 살고 나오지 뭐. 나와서 또 택시 몰면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며 “실제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업체를 바꿔 운행하는 기사들도 봤다”고 밝혔다.
D 택시운수회사의 관계자는 “지금은 인권문제 때문에 회사가 택시기사를 채용하면서 그 사람의 신원조회를 해볼 수 없다”며 “심지어 운수회사끼리도 운전자들의 신상기록을 공유하지 않아 회사는 새로 뽑은 택시기사가 이전 회사에서 어떤 사건을 저질렀는지 전혀 알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전 회사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택시기사가 다른 회사로 옮겨 일을 하다가 경찰에 검거된 적이 있었다”며 “잡히기 전까지 회사에선 그가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택시 운전자의 범죄경력을 확인하고도 고용하는 택시운수업체도 간혹 있다는 사실이다. 이 관계자는 “택시기사가 부족해 전과기록 등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눈감고 받아들이는 회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B 택시운수회사의 관계자는 이번 서울시의 방안에 대해 “회사의 입장에선 서울시가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신원조회를 한다면 기사들을 관리하기가 편해지지 않겠는가”라고 조심스런 입장을 전했다.
택시기사 A 씨도 “기사들도 처음엔 범죄자 취급을 받아 기분 나쁘겠지만 신원조회를 통해 반사회적 범죄 경력이 있는 기사들이 퇴출된다면 손님들에게 택시 운전자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고 택시 범죄도 줄어들지 않겠는가”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은 “이번 서울시의 택시기사 신원조회 조치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조의 관계자는 “택시 범죄의 대부분이 불법 도급제나 지입제 등에서 기인하는데 서울시나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보다는 법인 택시기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인권침해, 탁상행정을 펴고 있다”며 “택시기사들의 신원조회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