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잃은 배 뜨자 ‘군침 삼키는 소리’
▲ 11월 29일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영결식이 끝난 뒤 영구차가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진해운은 그간 조 회장의 중환설이 나돌면서 인수합병(M&A)설에 휩싸였었다. 10월 초 외국계 해운사인 제버란 트레이딩이 624만 주를 대량 매도하면서 한때 매수자가 누구인지 궁금증이 더해지기도 했다. 제버란 트레이딩은 현대상선 주식을 한진중공업에 팔면서 현대상선에 대한 경영권 분쟁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보니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매수자는 이스라엘 해운업자인 세미 오퍼로 알려졌는데, 직접적인 경영권 참여는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세미 오퍼 지분은 12.9%로 조수호 회장 측 17.3%(조수호 회장 6.87%, 한진해운 8.78%, 대한해운 1.67%), 조양호 회장 측 11.06%(대한항공 6.25%, 한국공항 4.33%, 한진 0.48%)의 지분을 위협할 만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조수호 회장 측의 한진해운 자사주 8.78%는 의결권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한진해운은 11월 17일 대한해운과 주식 맞교환을 했다.
120만 주(1.6%)의 지분이 대한해운으로 넘어가면서 자사주 지분은 10.46%에서 8.78%로 낮아졌다. 대한해운이 백기사 역할을 하면서 자사주 문제를 해결한 것.
한진해운 측은 M&A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조수호 회장이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고인에 대한 추모의 분위기를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사주 맞교환 등 조 회장 사망 이전부터 적대적 M&A 시도를 방어하기 위한 준비를 해오고 있다.
대한해운과의 주식 교환에 대해서는 “대한해운은 벌크만 하고 있고, 한진해운은 컨테이너가 80% 비중이다. 대한해운 입장에서는 컨테이너선은 진입장벽이 높아서 사업을 직접 하기보다는 제휴를 염두에 두고 주식 교환을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한진해운이 2001년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발행 물량이 전체 주식의 18%에 해당하는 양이기 때문. 아직 신주인수권이 행사되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소유주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문제다.
▲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 ||
이와 관련해 박정원 한진해운 사장은 “BW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해, 소유주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했는데, 뒤늦게 한진해운 측은 “잘못 전해진 것으로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 궁금증을 더 키우고 있다.
외부의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한편 조수호 회장의 지분을 정리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당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주주격인 조양호 회장이 섭정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양호 회장의 동생 중 2남, 4남인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이 각각 한진중공업과 메리츠증권으로 그룹에서 분리했지만, 3남인 조수호 회장의 한진해운은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 사실상 한진그룹의 소속이다.
계열 분리에 대해서는 “한진그룹은 수송물류그룹으로 경쟁력 확보나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해 당분간 한진해운을 분리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조양호 회장이 사실상의 오너가 아니냐는 시선의 부담스러운지 “장기적으로는 계열 분리를 진행할 것이다. 이미 한진해운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되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조수호 회장의 유가족으로는 부인 최은영 씨(44)와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유경 씨(20)와 유홍 씨(18)가 있다. 부인과 두 딸은 한진해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태로 당분간 경영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조수호 회장의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시가 1300억 원의 50%인 700억원가량을 상속세로 내야 할 처지다. 그럴 경우 조수호 회장의 다른 형제들이 상속세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입할 가능성도 있다.
조양호 회장과 다른 형제들의 사이가 원만치 못하다 보니 한진중공업이 한진해운 주식을 매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선박 제조와 해운업은 연관 시너지 효과가 큰 사업군이다. 국내에서는 STX그룹이 선박제조와 해운업을 동시에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측은 “시너지 효과는 클지 모르지만 불황이 닥쳤을 때 동반 부실에 빠질 수도 있는 만큼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불황에는 물류량이 줄어 해운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선박 수주도 줄기 마련이라 상호 보완이 되지 않는다. 한진해운 주식 매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도 “상법에서 계열 분리된 회사는 분리 이후 3년 이내에는 원래 소속됐던 그룹의 계열사 주식을 투자목적 등으로 추가 취득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기존 지분도 보유제한이 있고 임원 겸임도 안 된다. 따라서 항간에 떠도는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각에서 최은영 씨가 신격호 회장의 조카이다 보니 롯데그룹을 연관시키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 한진해운은 “전혀 근거없는 얘기다. 롯데가 개입할 확률은 0%다”라고 일축했다. 최 씨의 어머니인 신정숙 씨(69)는 신격호 회장의 일곱 번째 동생이다.
현재는 한진해운에 대한 M&A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재계 및 증권가의 반응이다. 조수호 회장의 유언장 내용을 보는 것이 먼저겠지만 향후 지배구조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어떻게 M&A를 막아낼 수 있을지, 이 과정에서 재산싸움을 벌였던 한진가 형제들 간의 ‘구원’이 어떻게 작용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