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택 넘어 신기록 달성…목표는 3000안타 일찌감치 못박아
손아섭은 6월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맞대결에서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6회초 좌전 안타를 때려냈다. 이 안타로 개인 통산 2505번째 안타를 기록했고, 박용택의 2504안타를 제치고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
두산의 선발 라울 알칸타라를 상대한 손아섭은 앞선 두 타석에서 땅볼과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가 6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3번째 타석에 들어서 6구째 포크볼을 밀어쳐 좌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1루를 밟은 손아섭은 헬멧을 벗고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고, 현장에는 2504안타의 주인공인 박용택 해설위원이 손아섭에게 직접 꽃다발을 전달하며 KBO 대기록을 축하해줬다.
2007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손아섭은 고졸 신인 야수로 2007년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고, 그해 4월 7일 수원 현대전에 대주자로 경기에 나섰다가 이후 타석에서 첫 안타를 2루타로 때려냈다. 당시 상대 투수는 정민태였다. 그러나 데뷔 첫해 손목 부상으로 안타 1개 기록 후 나머지는 재활에 매달렸다.
이듬해인 2008년 66안타, 2009년 16안타를 기록한 손아섭은 2009시즌의 부진을 털고 2010년부터 풀타임 선수로 자리매김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교타자로 성장하며 2010년 129안타를 시작으로 2023시즌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2015년을 제외하고 2012년부터 2023년까지는 모두 150안타 이상을 때려냈다.
손아섭은 한 번도 하기 힘든 FA 자격을 두 번이나 행사했다. 2017년 데뷔 11년 차에 첫 FA 자격을 얻은 후 롯데와 4년 총액 98억 원의 계약을 맺었고, 2022년 두 번째 FA 때는 NC와 4년 64억 원 계약으로 팀을 옮기게 된다.
위기가 없었던 게 아니다. NC로 이적한 첫해인 2022년 손아섭은 타율 0.277(548타수 152안타) 4홈런 48타점 72득점 OPS 0.714의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자신의 커리어 최악의 성적이 이적 첫 시즌에 나오다 보니 손아섭을 향한 비난이 들끓었다. 손아섭은 반등을 위해 선수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던 선배 강정호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고, 시즌 종료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해 강정호가 운영하는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레슨을 받았다.
2023시즌을 앞두고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서 진행된 NC 다이노스의 스프링캠프에서 손아섭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손아섭은 지난 시즌 자신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22시즌 성적에 대한 아쉬움 컸다. 팀을 옮긴 후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는데 그런 욕심과 부담이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올 시즌을 앞두고 최대한 준비 많이 해서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는 경쟁력이 있는 선수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새로운 홈구장에 적응하면서 내가 해온 루틴이 흔들리고, 타석에서의 편안함보다 낯설다는 인식이 강했다. 내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에 올 시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손아섭은 미국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로스앤젤레스의 강정호와 한달가량 동고동락한 배경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강)정호 형과는 대표팀에서 친하게 지내며 가까워졌다. 마침 내가 아끼는 후배 허일(전 롯데)이 정호 형과 같이 일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됐다. 2022시즌을 치르며 내 자신에 한계를 느꼈고, 더 넓은 세계를 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정호 형을 만나 그 답답함을 해소하며 내 야구 인생에서 굉장히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손아섭은 강정호를 만나 하체 움직임과 타격 시 팔 높이를 조정했다. 타격할 때 맞는 면이 줄어든 점도 수정해나갔다. 강정호가 미리 준비한 트레킹 데이터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한 마디로 기초 공사를 재정립했다. 장타력을 다시 끌어올리고, 몸의 쓰임이나 타율을 높일 수 있는 기초 공사를 다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된 타격폼을 데이터를 통해 수정해나갔고, 마지막에는 드릴 훈련으로 교정했다. 이후 내가 고민했던 문제점들에 대해 정답을 찾은 듯 했다. 확신을 갖고 타석에 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뒤따랐다.”
손아섭은 2023년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었고, NC를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무대에까지 이끌었다. 무엇보다 생애 첫 타격왕(0.339)에다 최다안타왕(187안타) 등 2관왕에 올랐고, 올 시즌 2505안타로 KBO리그 역대 최다안타 1위를 달성하며 비로소 ‘안타 장인’ ‘타격 장인’으로 거듭났다.
손아섭은 최다 안타 1위에 오른 소감으로 “이 또한 야구 (선수 생활이) 끝날 때까지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면서 “나는 천재형 타자가 아니었지만 어떤 투수한테도 지고 싶지 않아 치열하게 달려왔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174cm, 84kg의 그리 크지 않은 체구로 프로 무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과 연구를 거듭했던 손아섭. 그는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포기를 모르고 달려왔다.
“야구에서의 타격이 정말 어렵다. 그래서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답을 찾기보다 방향성, 접근 방법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슬럼프에 빠지면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뭘 해도 안 될 것만 같은데 그 시기를 견뎌내면 이전의 고통이 경험으로 승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려움을 겪어도 탓을 하기보단 더 나은 타자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애써 위로를 삼는다.”
손아섭은 일찌감치 자신의 목표를 3000안타로 못 박았다. 3000안타는 42년 KBO리그에서 어느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3000안타를 달성한 이는 장훈(3085안타)이 유일하다. 현재 만 36세인 손아섭이 지금의 흐름을 유지한다면 39세가 되는 2027시즌 즈음에 3000안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부상과 체력 관리를 유지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손아섭 하면 ‘오빠 므찌나’가 떠오른다. 미니홈피 시절 손아섭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썼던 인사말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손아섭을 상징하는 문구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므찐’ 오빠의 대기록과 눈물겨운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