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건수 30년 새 반토막, 겨우 적자 면해”…분만기관 ‘공공재 차원 관리’ 목소리
심상덕 원장에 따르면 산모 한 명이 이 의원에서 자연분만을 하고 2박 3일 입원 후 퇴원하면 산모 본인이 의원에 내는 부담금 45만 원,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이 의원에 지급하는 비용 150만 원 등 총 195만 원의 수입이 발생한다. 제왕절개는 4박 5일 입원 후 퇴원하면 산모 본인 부담 비용 90만 원과 건보 지급 보수 190만 원을 합쳐 약 280만 원의 수입금이 잡힌다.
이 의원이 보통 한 달에 맡는 분만 건수는 10~15건. 만약 자연분만 10건, 제왕절개 분만 1건 등 총 11건의 분만을 소화하면 총 입원 수입은 약 2230만 원이다. 여기에 아기 난청 검사비 등 각종 비급여 검사비 등으로 월 500만 원의 수입이 추가된다. 외래 진료 수입은 평균 2700만 원 선으로, 입원‧외래‧검사비 등을 모두 합친 한 달 수입은 4930만~5795만 원이다.
지출 비용으로는 의사(심 원장) 1인을 제외한 분만실 간호사 3명, 외래 간호사, 청소‧조리사 등 인건비와 월 임대료 1500만 원, 검사 수탁료 500만 원, 관리비‧식재료비 200만 원, 배상보험료 등 각종 잡비를 모두 합쳐 약 5000만 원이 든다. 분만 10~15건을 소화해야 겨우 적자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의사 인건비는 처음부터 포기 수준이다.
심상덕 원장은 “30년 전 첫 개원을 했을 때는 분만을 한 달 평균 30건 정도 했는데, 출산율 감소로 지금은 그때의 3분의 1로 줄었다. 그런데 의료 수가는 그때도 지금도 적고, 비급여 항목 수가도 많이 줄어 수입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게다가 의료 분쟁이 일어났을 때 배상 금액도 최근 10억 원대로 크게 늘면서 사고가 한 번 발생하면 병원 문을 닫기 십상”이라고 토로했다.
분만 병‧의원 감소를 초래한 출산율 하락세는 ‘나라의 미래’가 안 보일 정도로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22’에 따르면 1991년 기준 국내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은 1.71명이었으나 통계청이 올해 2월 발표한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30년 새 ‘절반’으로 곤두박질쳤다.
의료계는 이에 더해 2002년 도입된 포괄수가제도 분만 병‧의원 감소세에 기름을 부었다고 입을 모은다. 포괄수가제는 환자가 입원한 후 퇴원할 때까지 발생한 진찰‧검사‧수술‧주사‧투약 등 진료 종류나 양과 상관없이 미리 책정된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다.
이를 보완하고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자연분만 1건당 ‘특별‧광역시를 제외한 지역 분만기관’에 지역수가 55만 원, ‘산부인과 전문의 상근 및 분만실을 보유한 의료기관’에 안전정책수가 55만 원을 추가로 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조건에 부합하는 분만 병원은 전체 병원의 절반도 안 된다. 추가 수가 금액도 자연분만 1건당 300만 원 안팎을 지원하는 일본과 비교해 절반도 안 돼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많은 산부인과 병‧의원들이 여성 질환만 다루거나 미용‧성형 등 비급여 항목 위주 진료로 전환하면서 분만 병원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새로 개업하는 산부인과 병‧의원에서는 분만 진료를 하는 곳을 아예 찾기 어렵다.
‘일요신문i’가 최근 6개월간(2023년 12월~2024년 5월) 개원한 전국 산부인과 병원을 전수조사 한 결과 △2023년 12월 산부인과 3곳‧여성의원 2곳 △2024년 1월 산부인과 2곳‧여성의원 2곳 △2024년 2월 산부인과 1곳 △2024년 3월 산부인과 5곳‧여성의원 1곳 △2024년 4월 산부인과 2곳‧여성의원 4곳 △2024년 5월 산부인과 4곳‧여성의원 3곳 등 총 29개 산부인과·여성의원이 개원했다. 이들 중 분만을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전부 여성질환이나 난임 등만 진료하고 있다.
무너진 분만 의료 인프라를 다시 세우려면 분만 병·의원의 재정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분만 수가를 현실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5월 3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책임을 방기한 채 일방적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며 “지난 4년간 물가상승률 12.8%와 인건비 상승률을 고려할 때 최소 10~15%의 제왕절개 포괄수가제 비용 인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상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부회장(경기 시흥시 예진산부인과 원장)은 “분만기관은 소방서와 똑같다고 생각한다”며 “민간기관에서 사업적 성격으로 분만인프라를 유지하게 할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분만기관을 공공재 성격으로 생각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장(서울 동대문구 린여성병원 대표원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게 아니라 5~10년 뒤 미래 세대의 분만 인프라를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최후의 보루로 믿고 있는 대학병원조차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