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유예·종부세 개편 언급하자 조국혁신당 참전해 야권 헤게모니 싸움 본격화
7월 10일 이재명 후보는 당대표 연임 출마 선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종부세에 대해서 “불필요하게 과도한 갈등과 저항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며 “제도의 당초 목표와 목적이 있지만 제도가 가지고 오는 갈등 또는 마찰이 있다면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금투세에 대해선 “거래세와 연동돼 있어 함부로 결정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도입 시기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다른 나라는 주가지수가 오르고 있는데 우리 주식 시장만 역주행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안 그래도 어려운데 금투세라는 것을 예정대로 하는 게 정말로 맞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상속세 개정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상속세 일괄 공제액을 현행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집값이 상승하면서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이 과도하게 늘어난 만큼 공제 한도를 높여 대상을 확대하자는 논리다.
이재명 후보 발언은 당내 불거졌던 세 부담 완화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앞서 5월 민주당 지도부는 잇달아 세 부담 완화 정책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우클릭’ 정책 군불때기에 돌입한 바 있다. 그러자 전통적인 진보 지지층에서 거센 반발이 나왔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SNS에 ‘부동산, 금융 등 자산불평등 심화를 막고 공정사회를 실현한다’라는 당 강령을 올리면서 ‘종부세 폐지’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당은 “시민사회에서 당이 종부세를 폐지하고 완화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수습에 나섰다.
정치권에선 이재명 후보의 차기 대권 가도와 연관 짓는 해석이 나왔다. 중도층 외연 확장을 위해 감세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7월 11일 5선 중진인 박지원 의원은 BBS라디오 ‘함인경의 아침저널’에서 이 전 대표 출마 회견 발언에 대해 “민주당의 절대적 과제인 정권교체를 위해 외연 확장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이 후보가 대표직 연임을 하게 된다면 민주당도 종부세는 물론 상속세·금투세 문제에 있어 더 중도적인 노선으로 옮겨가지 않겠나”라고 해석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재명 후보가 산토끼(중도층) 잡으려다 집토끼(지지층)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종부세는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됐다. 납세자 1% 미만 고가주택·다주택 소유자를 대상으로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부유세 개념으로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는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으로 금투세를 추진했다. 국내 주식·공모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으로 연간 5000만 원 이상의 양도차익을 거둔 투자자에게 차익의 20~25%를 양도소득세로 부과하는 제도다. 2023년 시행 예정이었지만 2025년 1월로 유예됐다.
당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그동안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종부세 개편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7월 11일 진 위의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재명 후보의 세 부담 완화 시사 발언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이신 것 같다. (당대표) 재임하는 동안에도 정책위의장에게 검토를 해보자는 지시가 없었다”며 “당선되시면 하신 말씀이 있으니 당내 논의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시겠지만, 나는 그때도 안 된다고 얘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진 위의장은 금투세 유예에 대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후보가 대표로 취임하면 논의가 불가피하겠구나 예상은 한다”고 말했다. 이어 종부세 검토 필요성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7월 12일 김두관 민주당 당대표 후보 측은 이재명 후보의 세금 완화 발언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이래 민주당 세제 정책의 근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라며 “종부세 근본적 재검토와 금투세 시행 유예는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행위다. 이를 말하는 후보는 ‘당대표 자격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종부세, 금투세 등은 당내에서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친명계가 당을 장악한 뒤로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워졌다. 이재명 후보가 얘기한 거라 다들 더 조심하는 것 같다”며 “부동산이 지난 대선 승패를 가른 주요 요인이라서 이재명 후보가 종부세 검토 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종부세는 그동안 많이 완화돼서 조세 대상자가 소수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과 형평성 등을 추구하기 위해서 금투세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감세 정책 논쟁은 야권 헤게모니(패권)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7월 14일 조국 조국혁신당 당대표 후보는 SNS에 “2022년 여야 합의로 종부세 공제액을 12억 원으로 올리고 공시 가격도 현실화해 부담을 지는 사람 수가 대폭 줄었다. 그럼에도 또 종부세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겠다고요? 그러면 지역, 완전히 망한다”며 “지방교부세는 국가가 재정적 결함이 생기는 자치단체에 교부하는 금액으로 종부세는 법인세와 함께 지방교부세의 주요 재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그동안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으로 보수 진영을 꼬집어온 민주당이 감세 정책을 추진하면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양부남 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종부세 천분위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종부세의 약 70%는 납부자 상위 1%가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보유한 부동산은 공시 가격 기준 1인당 평균 835억 2000만 원가량이었고, 종부세 평균액은 5억 8000만 원이었다. 양 의원은 종부세를 폐지하면 소수 상위 계층에 감세 혜택이 집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투세 과세 대상자도 전체 주식투자자 1%인 15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7월 12일 황현선 조국혁신당 사무총장은 간담회에서 “(민주당은) ‘부자감세’로 인해 세수가 부족하다고 계속 지적했는데, 그 핵심이 법인세와 종부세였다”며 “세수 결손은 비판하면서 부자감세 기조와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당 안팎 우려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7월 15일 이 후보는 세제 개편을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들을 조정해 가는 게 정치”라며 “국민들의 뜻을 존중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 정책을 고집해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민주당이 우클릭해서 중도층을 잡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반면 조국혁신당은 문재인 정부 노선을 계승하며 진보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진보 진영 간의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